지난주에 ‘한중미래숲(韓中未來林, Future Forest)’이라는 환경단체의 일원으로 중국 내몽고에 있는 쿠부치 사막에 사막화와 황사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고 왔다.

두 다리를 휘감는 붉은 모래의 향연에 나를 맡긴 채, 식을 줄 모르는 이 광활한 대지에서 부끄러운 양심을 젖은 모래로 싹 덮었다. 나무를 심고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바라본 사막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눈이 내렸다. 나는 이 면역되지 않은 환경에서 상한 입김을 뿜어내고, 약한 호흡기를 가진 덕에 며칠을 고생했었다.
흔히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4월에는 두 손으로 고이 받아들인 봄의 축제에 취해 연세의 백양로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다가도 이맘때쯤 찾아오는 먼지와 모래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미해져 버리는 봄 향기를 놓아버리게 된다. 그래서 4월이 더욱 간절하다. 스쳐 지나간 파편들이 생채기를 남긴 이 연약한 환경 속에서 자활의 필요성을 깨닫고, 구심점을 획득하자.

환경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소비해도 타인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 공공재가 아니라 나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공유자원(Common Resources)이라고 불린다. 내가 가진 환경에 대한 관심       은‘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이라는 시장경제학적 용어로 정리가 된다.

‘파레토 최적 상태’란 한 사람의 후생을 증대시킬 때 다른 사람의 후생이 감소될 수밖에 없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 상태를 의미한다.

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만족을 극대화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사실 내가 ‘소유’하지 못하는 환경과 같은 것에 대하여 어떻게 효용을 극대화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의 이기심은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충돌하는 이기심을 조정하게 되고 협력하게 되며, 최종적으로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협력과 조정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를 언급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나의 후생이 감소될 것을 대비하는 것이다.

4월의 황사와 같은 의도하지 않은 생태적 위협은 보존적 자아를 부활시킨다. 위협에 대한 방어적 기제가 충만할 때 그리고 이를 행위로 풀어낼 때 면역으로 이행될 것이다. 환경은 면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 인해 항상 통증이 뒤따른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들은 파괴적 행위에 대해서 감히 보상받을 가치가 있다고 외쳐본다.

면역은 지속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내일도 면역제를 투여하는 일을 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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