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캠퍼스에 화려한 봄이 찾아왔다. 노란 산수유를 필두로 개나리가 피었다. 목련 망울도 곧 터질듯 팽팽해졌고 진달래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이제 언더우드 동상 앞의 벚꽃만 활짝 피면 우리 캠퍼스는 그야말로 눈부신 꽃동네가 될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청춘의 한 때를 보내는 연세인은 분명 축복받은 이들이다. 졸업생들이 모교를 떠올릴 때 배웠던 지식보다도 기쁘고 슬플 때 찾아가곤 했던 캠퍼스의 구석구석을 먼저 언급하는 것을 보아도 우리 캠퍼스의 아름다움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졸업생들이 떠올리는 캠퍼스의 명소들은 이제 대부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그만 연못이 있던 곳에는 상경대가 들어섰고, 기숙사로 넘어가는 고즈넉한 산길은 벌써 오래 전에 아스팔트로 포장돼 아침이면 차들이 꼬리를 문다. 평화의 집 옆 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던 키 큰 떡갈나무도 연신원과 함께 사라졌고, 종합관 뒤쪽의 널따란 잔디밭도 위당관을 짓느라 없애 버렸다. 추억의 장소 중에서 청송대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그것도 새로 지은 노천극장과 그 위 언덕에 들어선 전파망원경 때문에 호젓함이 사라진 상태로.

나를 키운 팔 할은 아마 연세 교정이었다. 문과대였던 본관 앞 잔디밭에 앉거나 누워 망중한을 즐겼고, 점심 때면 청송대를 지나 언덕 위로 올라 무악산을 바라보며 도시락을 먹었었다. 신촌에서 술 마시고 난 후 가끔 학교로 다시 돌아와 흙과 잔디로 덮여 있던 옛 노천극장에 앉아 무대 뒤 키 큰 미루나무를 바라보았고, 청명한 가을날에는 사회대 뒤편의 연못가 벤치에서 나무 그림자를 들여다 보기도 했었다. 그때 무악산은 더 깊었고, 청송대는 더 울창했다. 내 청춘의 기쁘고 힘든 날들을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연세의 자연 속에서 맞이하고 흘려보냈다.
그런데 그 추억의 장소들이 이제는 정말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곳이 돼 버렸다. 캠퍼스는 학생들에게 고향과 같은 곳일진데 이제 그들은 어디서 고향을 찾아야 할까. 격동의 세월을 헤쳐 오며 양적 팽창을 이루느라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런데,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한 군데 쯤은 변치 않고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곳이 대학 캠퍼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파에 휩쓸려 몹시 힘들 때 불현듯 찾아오면 마치 고향처럼 푸근하게 반겨줄 수 있는 곳이 캠퍼스여야 한다. 젊은 날 치열하게 꿈꾸고 고뇌하던 장소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그곳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면에서 힘이 솟아날 것이다.
세계의 대학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캠퍼스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지키면서 개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참으로 아름다운 환경을 지닌 연세 캠퍼스이기에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대학다운 캠퍼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차 없는 백양로 양쪽으로 개울물이 흐르고, 캠퍼스 구석구석에 예술의 향기 가득한 조각상이 서 있고, 제멋대로이던 건물들이 외부 리모델링으로 조화로워지는 모습이 한낮 꿈이 아니라 5년 후의 우리 현실이 되기를 바라본다.

김 용 민교수(문과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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