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논술세대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써먹어봤을, 이젠 식상하다 못해 너덜너덜하기까지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문장은 사실 그렇기에 또 하나의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맞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사람 인(人)에 사이 간(間)을 쓰지 않던가.

여기, 우리가 속한 또 하나의 인간사회가 있다. 연세사회, 내가 이곳의 일원이 된 지도 어느덧 1년. 선배들이 그래왔고 지금 08학번들이 그러하고 앞으로 들어올 무수한 새내기들이 그러할 것처럼, 2년 전의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과는 다른 형태의 인간관계에 꽤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참을 수 없는 ‘얕음’에 너무나도 깊은 실망과 회의에 휩싸였었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려면 어느 정도 함께 보내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반에서, 동아리에서, 과 학생회에서 새내기들더러 자꾸만 오라하며 밥 사주고 술 사주고 MT 가고 하는 것도 다 이 시간을 좀 더 챙기기 위함이다. 이런 과정에 적응하고 새 인간관계를 다져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해 소속감을 느낄 다른 어딘가를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현실을 견디다 못해 반수라는 극약 처방을 감행했던 나 같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새내기 모시기로 한껏 들떠있던 백양로가 차분해지는 4월이 되면 으레 그렇듯 또 한 차례 새내기 병이 유행할 것이다. 선배들은 마치 이제 자신들은 그것에서 자유로운 양 행세할 테지만 그래봐야 한두 살, 많아야 대 여섯 살 차이가 날 뿐. 사실 속사정은 다 똑같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입을 모아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졸업을 해도 취직을 해도 결혼을 해도 늘 그렇다. 하다못해 우리 할머니도 그런 얘길 하신다, ‘사람이 제일 모르는 거’라고. 결국은 또 하나의 평생과업인 셈.
그래서 나는, 뜬구름 잡는 얘기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주고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Give & Take와 효율성이 마치 시대의 진리인 양 숭앙되고 있는 요즘,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내려는 시도는 적어도 ‘인간관계’에선 아직 통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방에게 준만큼 돌려받으려고 하면 많이 받아봐야 그만큼이고, 그보다 덜하면 덜했다.

‘왜 나는 저 사람을 이만큼 좋아하는데, 저 사람은 나를 그만큼 좋아해주지 않지?’ 이 질문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면, 새로운 만남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 인연이 있다면 천리 밖에 있어도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지척을 마주해도 못 만난다 했다. 그러니 누구를 만나든 아쉽지 않게 주고, 받을 것은 잊어버려라. 그 사람이 당신이 만날 ‘그’ 사람이라면, 분명 그보다 더한 것이 돌아올 것이다. 다들 잘 알겠지만, 기대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기쁨은 언제나 크다.

/김지혜(심리·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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