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여자더러 내 구두 소리는 그건 자연(自然)이요, 고의가 아니니 안심하라고 일러 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어서 가야 할 길을 아니 갈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나는 그 순간 좀 더 걸음을 빨리하여 이 여자를 뒤로 떨어뜨림으로써, 공포에의 안심을 주려고 한층 더 걸음에 박차를 가하였더니, 그럴게 아니었다. 도리어 이것이 이 여자로 하여금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 계용묵 「구두」中

요즘 어두컴컴한 밤길을 홀로 걷다보면, 전에 없이 몸을 자주 움츠리게 된다. 스치는 바람결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괜스레 지나가는 사람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내 모습에 한숨만 푹 쉬곤 한다. 혹자의 ‘너는 얼굴이 무기야’라는 말도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는 것이다. 도시의 밤길을 걸으며 ‘누가 뒤에서 쫓아오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여자가 어디 나 하나뿐이랴. 더구나 하루가 멀다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은 애써 추스른 마음을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하여도 ‘잠재적 범죄자’로 의심받는 남자들의 속 또한 그리 편하지는 않으리라. 「구두」가 50년대에 발표된 작품인 걸 고려하면, 이미 그 당시부터 남자들은 어둠 속 무법자쯤으로 생각됐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이 가지는 개인성은 무시한 채 잠정적 범죄자로 내몰렸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신의 경험을 빗대 ‘이성에 대한 모욕이라 느꼈다’는 작가의 변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어둠만 내리면 서로 의심의 눈초리와 불쾌한 눈으로 맞서야 하는 걸까.

먼저 여자들 스스로 최소한의 자기방어 수단을 갖추도록 권하고 싶다. 호신술을 습득하거나 호신용품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낄 것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한한 보호를 바라기보다 적극적인 자기 보호에 힘쓰는 것이다. 한편으론 밤길에 조그만 구두소리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줄 아는 남자들의 배려도 필요하다. 더불어 사는 세상,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배려가 우리들의 밤길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강조아 학술부장 ijoamoon@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