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세대학생들의 목소리로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해보겠다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며칠 전, 이 모임에서 이상한 MT를 하고 집에 들어왔다. MT라면 보통 강촌으로 기차타고 가서, 게임 몇 개 하고, 술을 오지게 먹고, 다음 날 아침에 라면 끓여먹고 부랴부랴 와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홍대 카페 구석에 진을 치고 회의를 하다가, 새벽 3시가 다 되어서 신촌 자취방에 들어가서 야식 좀 먹고, 얌전하게 수다 떨다가 첫차타고 집에 왔으니, 늘 하던 MT와는 거리가 멀다는느낌이든다.

하지만 지금껏 MT는 강촌, 게임, 술, 라면 같은 몇 가지 단어로 원형(prototype)을 만들어 놓고는, 여기에 충실한 재현을 해야만 하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서 피곤하기만 했다. 돌아와도 "우리 그때 진짜 술 먹고 힘들어서 쩔었잖아!" 정도 외엔 공유할 것이 없었다. MT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 인지보다는, MT의 원형을 충실하게 따랐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에만 전전긍긍하는 꼴이 됐다.

그래서인지 강촌에서의 추억이라는 것이 서울 도심에서의 그것보다도 덜했다. 모임이 나아갈 방향, 세부 계획들을 이야기한 것은 영락없는 회의였지만, 멤버십 트레이닝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면 충실한 MT 이었다. 초조함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서로 배려 받은 기분이었다.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신기함을 넘어서 'MT는 원래 이런 것을 하기 위해 있는 건데.'라며 그 목적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요컨대 익숙하기만 한 것들은, 역설적으로 익숙하기에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별로 없는 듯하다. 게다가 조합할 수 있는 선택지의 수도 적을 때는 가지고 있는 원형을 절대시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늘 판에 박힌 대로만 '재현'하는 것에 매달리게 되기 십상이다. 잘 놀면서 친해지기 위해서도 놀아본 경험이 필요하다.
‘잘 노는 곳’을 몇 군데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원형을 수정해 보면 좋겠다.

이건 여유가 필요한 부분인데, 학교가 여유에 대한 상상력이 없다는 것은 아쉽다. 학교 의 정책들을 보면 이런 상상력을 허락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든다.

당분간 주어진 조건에서 학생들끼리 최선을 선택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밤새 모두를 ‘대동단결’하게 만들겠다는 강박을 버리고, 삼삼오오 약간의 알코올로 뇌를 적시면서 느긋한 수다를 떨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 오늘 꼭 끝장을 봐야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는 자기가 누구인지 말하기도, 듣기도 어렵다. 사람이 많다면, 강력한 한 점에 집중을 요하는 MT보다는, 여러 개의 분산된, 유동적인 점들이 중심이 되는 MT에서 덜 피곤하고 더 이야기 나눌 수 있겠다.
우리 모임은 시작한지 이제 두 달째인데, MT를 통해서 친해지자고 윽박질렀던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고맙다.

/백승덕(기계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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