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학원 신입생이다. 학부는 다른 학교를 졸업했기에 전의 학교와의 차이점을 나도 모르게 찾게 된다. 특히 일주일도 채 안 된 시간동안 나에게 반짝 다가왔던 부분이 있다. 실라버스(syllabus)였다. 처음에는 뭔가 했다. 그건 내가 강의계획서라고 부르던 것이었다.

근처 학교에 다니는 동생한테 물어보았다. "너희 학교도 실라버스라고 하냐? 강의 계획서를?" "응" "왜 그걸 강의계획서라고 안 해?" "아, 언니. 그냥 영어로 한 것 가지고 뭐 그렇게 심각하게 그래. 그래도 우리는 조모임이라고 해. 팀플이라고 안하고" 내가 예민한 걸까. 혹자는 영어를 섞어 쓰는 이유가 영어단어를 까먹지 않기 위해서란다. 그럼 조어 빼고는 다 영어로 쓸 건가? 하긴, 요즘 나라에서 잉글리쉬 사용을 서제스트 하긴 한다. 그럼 컴플레인 하지? 우리말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 무척 마음이 아프다.

지성의 공간인 대학에서 한국어 쓰는 사람이‘별것도 아닌 것에 신경 쓰는 사람’으로 취급받다니 말이다. 교정을 둘러보면 심심치 않게 외국 학생들을 볼 수 있다. 그렇다. 바야흐로 세계화 시대다. 그러면 외국학생들에게 한국말을 배우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최상의 강의를 하는데 한국인으로서 한국어가 적합하다면 굳이 그들을 위해 영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독일에 가면 독일어를 배우지 않으면 힘들고 프랑스에 가면 불어를 배워야 한다. 물론 영어를 배우지 않고는 지금 시대에 살아남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말이 있고 그것에 대한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왜 언어에 상하를 두는 것일까. 우리는 영어와는 다른 언어다. 콩글리쉬가 대한민국의 다른 공식어인가? 한국어를 더 이상 오염시키지 말자. 실라버스를 타고 세계로 갈 셈인가? 그러면 그곳에 당신의 정체성도 챙겨갖고 가라.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어 조금씩 온도를 높여서 가열하면 서서히 죽는다. 그러나 끓는 물에 개구리를 바로 집어넣으면 펄쩍 뛰어 밖으로 도망치려고 시도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때 사람들은 놀란다. 나도 모르게 내 삶 속에 너무나 깊숙이 침투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는 강하다. 그 어떠한 무기보다 강력하게 소리 없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의 문화. 한국의 가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던 가르침은 어디에 갔는지. 언젠간 우리는 한국 사람끼리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그런 비극을 맞아야 하는 걸까. 긴장해야 한다. 그렇게 소리 없이 영어는 언제부터인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것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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