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 62호 ‘전도 좀 도와주세요’라는 기사에서였다. 노방전도자를 만나기 위해 한시간 넘게 백양로를 서성였다. 한 노방 전도자가 처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만세”를 부를 뻔했다. ‘드디어 낚였구나!’ 표정 관리하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친절한 분은 처음이라고 했다. 전도하는 학생들을 따라 그들의 교회에 들어갈 때까지. 취재 내내 나는 그들을 속였다. ‘진실’을 듣기 위해서 계속 그래야 했다.

기독교동아리 회원에게 노방전도에 대해 질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하고 싶은 질문은 안하고 딴 질문만 잔뜩 했다. 처음부터 물어보면 방어기제가 생겨 ‘속마음’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아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에 관해서만 잔뜩 질문하다 말미에 우연히 지나가는 척하면서 물었다. “노방전도 너무 공격적이지 않나요?” 그리고 기사에는 지나가면서 물은 척한 이런 질문들만 실렸다. 나는 정말 진실을 밝히겠다는 기자의 신념으로 의도를 숨기고 접근했을까. 여기서 도덕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돼버렸다. 그저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정당화해줄 가치가 필요해서 ‘언론의 사명’이라는 미명을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취재원을 자기가 하고픈 말을 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기자’를 어느덧 따라하고 있었다. 그래야 더 큰 게, 내가 원하는 게 나오니까! 이제껏 수많은 기자들은 수많은 이들을 낚고 낚아서 진실을 전했다. 그들이 언론의 사명감을 가지고 했는지,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 그랬든지 간에 결국 진실은 밝혀졌다.
결국 그걸로 위안을 삼고 있다. 나도 미약하게나마 진실을 전하고 있을까. 망할 ‘놈’의 기자만 돼버린 것은 아닌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