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부 부주장 오현호(체교·05)

2004년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내가 어떤 대학교로 가게 될지 결정되는 순간이 있었다. 고려대, 경희대, 광운대, 한양대, 연세대. 5개의 대학교중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단 한군데, 바로 연세대학교였다. 아이스하키선수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연고전은 한국에서 아이스하키를 하는 사람이라면 꿈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아이스링크가 있고 우리 집과 가깝기도 했지만 그래도 연세대에 가고 싶었다.
며칠전 모 대학 아이스하키부 감독의 엽기적 체벌에 관한 기사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운동선수는 팀에서 승리 지상주의에 휘둘려 운동의 참맛을 잃게 된다. 하지만 연세대학교는 여느 대학과는 달리 운동선수들의 학점관리를 해주지도 않고, 체벌도 없고, 선후배, 동기관계도 화기애애하다. 다행히 나는 연세인이 됐고 벌써 4학년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바라던 연세대에 와서 그간 난 무엇을 했는가.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연고전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했던 시간들이다. 운동선수가 아닌 연세인들에게는 1년에 한번 있는 짧은 축제이지만, 우리들의 머릿 속에는 1년 365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누구는 1년에 이틀 생각하는 일을 363일이나 더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남은 1년. 연고전도 한번 더 남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연고전이기에 지금까지보다 더욱 열심히 준비할 거다. 그런데 한편으론 좀 다르게 보내보고 싶다. 이를테면 수업 때문에 주말까지 법대 세미나실이나, 상대 자치실에서 ‘조모임 고문’을 당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기말고사 기간엔 무거운 책들을 들고 중도에 줄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다 날쌘 손놀림으로 좌석을 차지하고 싶다. 밤새 공부하다 새벽 청소시간에 밖으로 쫓겨나 추위에 떨며 못 다한 번개공부도 해보고 싶다. 수강신청기간에는 꼭 듣고 싶은 수업을 위해 미친듯이 클릭하며 수강인원이 초과했다는 알림창을 마주해 보고 싶다. 적어도 남은 1년은 공부도 치열하게 해보고 싶다. 친구들과 윤동주 시비 앞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먹어 보고도 싶다. 이렇게 소소한 것들을 해보고 싶다. 나도 연세인이기 때문이다.
몇 달전 친구인 우리학교 운동선수가 신문에 보도됐다. 운동선수가 학점이 높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높은 학점이 전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 속에서 그 귀하디 귀한 지면을 차지하게 되다니. 그 기사를 읽고, 대단하다고 감탄해야하는 우리네 현실이 조금 슬프다.
나도 연세인이다. 단지 운동도 열심히 해야할 뿐. 나는 진리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한 마리 외로운 독수리다.

/아이스하키부 부주장 오현호(체교·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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