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국희 기획취재부장

백양관에 수업을 들으러 갈 때였다. 계단을 올라가려니 다리가 아프고 수업에도 늦어버린지라 온갖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투덜대고 있던 차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장애학생이라면 어떻게 여길 올라와서 수업을 들어야 할까?”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문제의식들은 의외로 일상적인 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이른바 명문대로 불리는 우리대학교, 노벨 수상자들이 강연회를 열고 자랑스럽게 ‘꿈’을 이야기하는 이곳에도 분명 소수자는 존재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수업을 듣는 강의실, 거니는 교정, 심지어 연고전에 이르기까지 장애학생 문제는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단지 우리가 둔감했을 뿐이다.


장애학생지원팀에 따르면 현재 32명의 장애학생이 우리대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에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난 학생도 있고 사고로  장애를 얻은 학생도 있다. 어쨌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들이 우리대학교의 평등한 구성원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평등이라는 것이 너무 획일적으로 적용돼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학교의 전반적인 시설을 살펴보면, 장애학생들이 비장애학생들과 지나치게 ‘평등’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 건물의 입구부터 살펴보면, 자동문이 따로 설치돼 있는 곳이 별로 없어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은 상태에서는 문을 드나들기 힘들다. 겨우 입구를 통과하더라도 여전히 난관은 남아있다. 백양관과 연희관에서 심한 신체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2층 이상을 올라갈 수 없다. 따로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학생에게 ‘계단을 발견했다’는 말은 ‘그 위로 올라갈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말과 동의어인 셈이다. 건물 밖으로 나와 보자. 그들에게 종합관 언덕은 거의 재앙에 가깝다. 비장애학생도 힘들게 올라가는 그곳을 장애학생이 올라가는 것이 상상이나 되는가. 목발을 짚고 다니는 한 여학생으로부터 정문에서 언덕을 넘어 종합관 강의실까지 대략 40분 정도가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KTX를 타고 서울에서 천안까지 35분, 또 서울에서 대전까지 49분 만에 도착하고는 ‘세상 참 좋아졌네”라고 감격스러워하던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보이는 차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차별’도 있다. 대다수의 구성원들에 의해 공유되는 문화 속에는 소수에 대한 차별이 내제돼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차별은 다수라는 이름 아래 암묵적으로 통용되곤 한다. 아카라카 응원단 중에 장애학생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연고전 때 휠체어를 탄 학생이 ‘원시림’에 맞추어 응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어장애를 가진 학생이 술자리에서 'FM' 할 것을 강요받았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의문들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문화가 그만큼 철저하게 비장애인 중심적으로 구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장애학생 문제는 충분히 심각한 사안이지만 학교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뚜렷한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를 문제에 대한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익숙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장애학생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단순히 무관심에서는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함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학교나 총학생회에서는 추진 사업안 끝자락 즈음에 장애학생 문제 해결을 언급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를 매년 언급돼 오던 사안으로 여길 뿐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비장애라는 레테르 속에 안주하는 이들에게 장애라는 것은 단지 먼 나라의 일인 것일까.


언젠가 한 장애학생 지도교수로부터 “장애에 관한 관념에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은 당연함과 익숙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수자를 짓누르고 있는 현실이 우리대학교에 존재하는 한, 또 대다수 구성원들이 그것에 익숙해져있는 한 장애학생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손국희 기자 khelb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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