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화장 문화는 어떨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흰 피부의 소유자를 귀인이라 생각해 백색피부를 숭상해왔다. 양
학예연구사는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에게 미백효과가 있는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한 것은, 백색피부를 가꾸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화장 문화는 삼국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발달했는데 이는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 여인의 뺨과 입술이
연지로 단장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사용한 화장품으로는 쌀가루, 분꽃씨 등을 이용한 ‘백분’과 홍화로 만든 ‘연지’, 밤나무 등을 태운
재로 눈썹화장을 할 수 있는 ‘미묵’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청자 문화의 발달로 견고하고 화려한 화장용구를 제작해 널리 사용했으며
신분에 따라 화장법도 달라졌다. 기생은 하얗게 분을 바르고 입술을 빨갛게 칠하는 반면, 여염의 규수나 부인들은 평상시에는 화장을 하지 않다가
연회나 나들이 때만 은은하게 엷은 화장을 함으로써 기생들과 분명한 차별을 뒀다. 반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유교윤리에 따라 사치스런
화장풍습이 제한됐으며 검소하고 실리를 중시하는 화장 문화가 지속됐다. 이는 장기간 지속된 임진왜란으로 인해 경제적인 빈곤을 겪었던 것도 한몫
했다. 19세기 말에는 서구문화의 유입에 따라 신식 화장법과 화장품이 유행했고, 1916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을
시작으로 화장품의 대량생산체제가 확립되면서 오늘날의 화장 산업 및 문화의 발판이 마련됐다.
쌩얼 열풍, 그 진지한 패러독스
“현대의 화장은 인간관계에 있어 여성에게 필수조건이 됐다”는 서경대 김 교수의 말처럼 현대 사회는 개인을 평가하는 또
하나의 기준으로 외모를 중시한다. 하지만 외모가 그 사람의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것은 비단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다. 현대에 이르러 그것이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됐을 뿐, 화장의 오랜 역사를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인류의 숭상은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쌩얼(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 열풍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진정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화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저 예의를 차리거나 관습에 따르기 위해 화장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은 쌩얼의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은 것 아닐까. ‘화장 권하는 사회’, 그 속에서 원치 않는 화장을 강요당하는 건 아닌지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