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중간고사기간이 지나고 나면, 지식과 경험에 대한 욕구로 반짝이던 학생들의 눈에서 학기 초의 강렬한 빛 대신 지친 기운이 엿보인다. 반면 학교캠퍼스는 젊고 싱싱한 자연으로 눈이 즐겁다. 연세대학교 창립기념 행사와 이를 잇는 학생들의 대동제는 바로 이때쯤 열린다. 연세의 자랑스런 전통을 기념하고, 학문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새롭게 도약을 다짐하는 일도 감격스런 행사지만, 대동제의 생산적 일탈과 축제를 통한 하나됨은 봄 학기를 잘 끝내기 위해서 한 번쯤 들러야 하는 정거장 같기도 하다. 총학생회의 회칙개정을 둘러싼 논쟁으로 갈등이 깊었던 이번 학기엔 대동제를 통한 공동체의 연대감, 그 긍정의 정신이 더욱 절실했다.
본래 제의적 성격을 띄고 있던 축제는 사실 원시시대부터 공동체의 연대감과 질서를 재창출하는 역할을 해왔다. 규범에 의해 억눌렸던 구성원이 신분과 종교적 규율 등 너절하게 일상을 억압하던 제도를 비웃고, 신분의 질서를 뒤집으며, 지배계층을 웃음과 풍자로 일갈할 수 있었던 장으로서 축제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기능을 맡아 왔다. 라블레는 카니발을 규정하면서 사회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정신으로 해석했다. 일방적 엄격함만을 요구하는 중세체제를 상상으로 전복하고, 합리성에 기반한 전통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비판적 유토피아의 비전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카니발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하비 콕스는 축제가 해방적이기 위해 집단에게 공유되고 역사적 경험에서 파생돼야 한다고 했다.
연세의 대동제가 해마다 5·18 민주항쟁 기념일부근에 열린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연세 축제는 우리 공동체의 근·현대 역사 속에 각인된 기억을 새로운 해방의 공간과 질서창조를 위하여 창조적이고 지성적인 방식으로 재창출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전 주요 방송의 뉴스장면에서 마주친 대학가 축제의 모습은 허탈하기 그지없다. 취기에 몸가짐조차 흐트러진 인파가 목격되는 대학축제현장을 보면 대동제가 과연 대학구성원의 생명인 지성과 도전, 신선함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적 기억을 창조적으로 이어가는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지성인다운 참신한 기획과 신선하고 실험적인 발상이 축제의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하기 위해, 우리가 과감히 던져버려야 할 너절한 일상이 있다. 흔히 보는 상업적인 콘서트나 유원지 행락객들의 그것과 우리의 축제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대학 축제는 이제 더 이상 축제가 아니라 상업적이며 제도화된 일상일 뿐이다.
물론 일부 낯 뜨거운 광경을 과장해 선정적으로 내보낸 미디어가 야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언론이 편파적이라고 불평할 것인가?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변혁의 에이전시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 에이전시를 부정하기엔 연세공동체의 구성원의 몸과 정신은 맑고 기운차지 않은가.
한 문화가 그 자신과 전혀 다른 창조적 공간을 상상해 낼 수 있다면, 그건 그 문화의 미래가 현재 속에서 기운차게 씨앗을 틔우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에게 진정 이런 자기초월능력이 없다면 그건 우리 연세공동체의 조로를 의미하는 안타까운 지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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