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사진부장

하나님.
지금으로부터 1백22년 전, 당신께서는 암흑으로 뒤덮였던 이 땅에 연세의 이름을 허락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 위에 굳게 세워진 우리대학교는 민족의 횃불이 돼 어두웠던 이 땅을 환하게 밝혀 줬습니다. 연세의 품안에서 자라났던 많은 이들은 시대의 빛이 됐고, 그 빛은 아직도 형형히 빛나고 있습니다.
일제의 모진 고문과 박해 속에서도, 지독한 군부 독재 정권의 군화발 밑에서도 꺼지지 않고 대한민국을 밝혀온 선배들을 기억합니다. 1백22년 동안 그들이 쌓아올린 연세의 이름은 2007년을 사는 지금의 연세인들이 감당하기 벅찬, 크고 위대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선배들의 위와 같은 노고를 우리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두 다리로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발밑을 받쳐주는 선배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우리들의 눈은 위로만 향할 뿐입니다. 연세대학교 창립 1백22주년을 자축하기 이전에, 이들에 대한 감사가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이것이 당신께서 저희에게 주신 연세의 1백22번째 생일을 온전히 감사할 수 없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5월의 연세는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 차 있습니다. 철쭉은 형형색색 피어나고, 살갗에 스치는 봄바람은 미소를 자아냅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학교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면, 분열돼 갈라졌던 지난 총투표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지난 주간까지, 연세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총학생회장의 총투표 발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지닌 연세 사회를 찬성과 반대 두 편으로 쪼개 놓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무시와 몰이해가 담긴 독설이 오고갔고, 그 와중에 4월의 연세는 차갑게 지나갔습니다. 총투표는 투표율 미달로 끝났고 투표용지들은 빛을 보지 못한 채 연기로 사라졌지만, 우리 마음에 남은 상처는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 온 뒤 땅 굳어진다는 옛 말이 있지만, 한바탕 폭풍우가 와서 쓸어버린 자리에는 굳어져야 할 땅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어제까지는 같은 반, 과 친구였던 이들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인사조차 나누지 않습니다. 백양로에는 총학생회장에 대한 인신공격성 현수막이 나부끼고, 서로가 붙이는 대자보들에는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불신만이 가득합니다. 갈라지고 찢겨진 연세 사회는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연세의 1백22번째 생일을 맞이하고도 기뻐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하나님. 이제 곧 대동제가 다가옵니다. 반목과 대립의 장소였던 학생회관 앞과 백양로에서 연세인 모두가 하나 되는 축제가 펼쳐집니다. 아마도 각종 대자보들로 얼룩졌던 게시판들에는 다양한 공연과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을 것입니다. 총학생회장이 투표 참가를 주장하며 무릎 꿇었던 그 자리는 축제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닿을 것입니다. 서로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옥신각신했던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축제를 위해 힘을 쏟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번 대동제를 통해 둘이었던 연세가 하나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반목했던 이들이 아카라카를 외치며 어깨동무할 때, 술잔을 비우며 서로에 대한 앙금을 털어버릴 때, 정녕 그럴 때에 당신께서 주신 연세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1백22년동안 한결같은 사랑으로 연세를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당신께 감사드리며 기도를 마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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