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호

버지니아 공대 참사로 인해 33명의 대학생이 명을 달리했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인식돼 온 캠퍼스 한 복판에서 그것도 백주 대낮에 벌어졌다. 강의실에서 기숙사에서 아까운 생명들이 공포와 비명 속에 희생됐던 것이다. 글로벌시대의 미디어는 화상을 통해 전 세계를 순식간에 경악하게 만들었다. 우리 캠퍼스 구성원들도 누구 못지않게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희생의 규모 외에도 범인이 한인 교포 1.5세대라는 사실과 캠퍼스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남의 이야기로만 비춰지지는 않는 것이다.

미국사회는 이러한 참사가 비단 버지니아 공대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어느 캠퍼스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개연성에 자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비주류 마이너리티의 일원으로서의 정신건강은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 게다가 총기소유가 허용되는 상황에서 사건 발생의 요건은 이미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캠퍼스도 미국 내에 존재했다면 역시 그 개연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코 미국대학들에 비해 더 나은 정신건강 수준을 보여준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총기소유가 허용되는 않는다는 점만이 유일한 차이라고 한다면 지나치다고 할 수 있는가. 사실 우리 캠퍼스에서도 이미 다양한 마이너리티가 존재한다. 심리적으로 외향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글로벌경쟁력 제고, 선도인력양성, 리더양성, 두뇌한국, 노벨상후보 등등의 용어들은 그야말로 ‘최고’, ‘더 베스트’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의 인식을 강요해 왔다. 게다가 불확실한 미래, 당장의 졸업 후 진로문제, 학업비용 등의 현실적 문제들은 잠재적 역량의 계발에 앞서 쉽게 자신을 움추려 들게 해왔던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캠퍼스는 다른 사람보다 늦게 숙성되고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너그러운 인내심을 보여주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역량이 있음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 뿐만 아니라 천천히 걸어가는 구성원들에게도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만이 건강한 캠퍼스를 가능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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