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칙 개정 총투표 사태를 둘러싼 커뮤니케이션 병목현상. 이대로는 절대 안돼

시대가 변하고 강산도 변하고, 10년 전과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엄청나게 변했다. 특히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거듭되는 진보를 이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 사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공유된다. 이른바 ‘대자보(아래 자보) 문화’, ‘플래카드(아래 플랑) 문화’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말이다. 특히 최근 신촌캠에서 학생회칙 개정과 한총련 탈퇴를 골자로 한 학생회칙 개정 사태(아래 학생회칙 사태)가 불거지면서 플랑과 자보가 엄청나게 범람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으나 상대적으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침체에 들어갔다. 학내 사안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이 이뤄진다고 평가받는 연세대정보공유(아래 연정공)나 우리대학교 인터넷 자유게시판(아래 자게)의 ‘논객’들이 유독 이번 사건에 대해서만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한참 침묵하더니… 총투표 끝나고서 불붙고

연정공은 그 역기능으로 말미암아 꾸준히 비판을 받아왔지만, 우리대학교 학우들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에 학내 사안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가장 많이 활용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래 연정공의 모습을 보면, 차츰 ‘연정공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연정공에 올라온 114000번부터 114469번까지의 4백70개의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학내 사안에 대한 글은 14개로, 2.97%에 지나지 않았다. 그 대신 개인적 관심사, 잡담, 학업에 대한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연정공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대학서열, 학과순위  관련 글 역시 11%였다.
그 이후, 5월 4일에 즈음해 점차 총투표에 관한 글이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수준이 낮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왜 투표 안 하는 건데? 빨갱이들 가만히 내버려 둘거야?” 정도의 수준에서 정체돼 있었다. 학생회칙 사태와 같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학내 사안을 두고, 연정공에서 논란 대신에 말장난 수준의 글들이 계속 올라온다는 것은 연정공이 ‘토론의 장’이 아닌 ‘‘흉아’들의 놀이터’로 고착됐음을 보여준다.
자게의 상황은 더 재미있다. 지난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1천5백44개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그 중 이번 학생회칙 사태와 관련한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가장 많은 게시물은 동아리 회원 모집(2백51개)이었으며 그 다음 순위는 행사 지원자 모집(2백개)이었다. 양적으로는 발전했으나, 토론의 장으로서의 기능은 쇠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난리가 나고

한편 이번 학생회칙 사태에 있어서는 자보와 플랑이 홍수를 이뤘다. 각 단과대와 과·반 등의 개별단위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자보와 플랑을 통해 드러냈다. 이번에 나온 자보만 해도 그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다. 총학생회가 ‘연세 학생사회에 드리는 글 1, 2’를 게재했고, 확대운영위원회에서는 그에 반박하는 자보를, 또한 총여는 총여 폐지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자보로 내걸었다. 각 단과대 운영위원회의 자보, 개인 형식의 자보, 교육투쟁위원회인 ‘우린 개나리가 싫어요’의 자보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아무개씨는 “이렇게 자보가 넘쳤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며 “다 똑같은 이야기 같아서 읽기 싫다”고 말했다. 법과대 학생회장 강경인(법학·휴학04)씨 역시 “대부분의 자보가 전지 크기로 출력된 상태에서 너무 많은 양의 자보가 붙어있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잘 읽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플랑 역시 마찬가지다. 총학생회, 각 단과대 운영위원회, 과·반, 동아리, 기타 단위들이 너도 나도 플랑을 내걸었고, 백양로는 그 어느 때보다 플랑 물결에 휩싸였다.

신촌에 출몰한 유령, 그 유령의 이름은…

이번 문제가 곪았던 고름 터지듯 표출된 단적인 예로 신과대 운영위원회(아래 신운위)에서 내건 플랑을 들 수 있다. 지난 3월 22일에 신운위는 신촌캠 총학생회장 최종우(신학·04)씨와 부총학생회장 김혜진(신학·04)씨를 비판하는 플랑을 내걸었다. ‘종우형제, 혜진자매, 기도합시다’, ‘종우야, 니가 만든 신과대 여학생회 없앨래?’ 등의 자극적인 플랑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으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떼어져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기도 했다(지난 3월 26일자 1561호 「연세춘추」 8면 참조).
개별 학생들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온라인 매체는 잠잠하고, 공격의 주체들이 주로 이용하는 오프라인 매체는 그야말로 전쟁터처럼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결과는 이번 사태로 생긴 연세구성원들의 생채기가 쉽게 아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뿐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목소리는 실체 없는 여론으로 캠퍼스 위를 부유할 것이고,  커뮤니케이션은 병목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발전적으로 대화를 나눠야 할 주체들끼리 대화가 없다면 연세사회는 그야말로 ‘암울하게’ 흘러갈 수 밖에 없다. 향후 그 회복 방안이 궁금하기만 하다.

/양해준 기자 yangyangha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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