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운동권이랑 비권이 나왔는데, 하도 싸워서 시끄러워.”
각 대학에서 한창 총학생회 선거가 진행되고 있었던 지난 2006년 늦가을, 대학생들의 입에 자주 올랐던 대화의 한토막이다. 이처럼 많은 학생들은 학생회 활동을 크게 운동권과 비운동권(아래 비권), 이 두 가지 성향으로  구분해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운동권의 사전적 의미는 ‘노동운동, 인권운동, 학생운동 따위와 같은 사회 변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의 무리’이며, 비권의 의미는 운동권의 의미에 ‘~가 아닌 사람’이라는 표현이 붙는다. 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이해하고 있는 의미는 이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지석(세라믹공학·03)씨는 “사실 뭐가 운동권이고 비권인지 잘 모르겠다. 요즘에는 소위 운동권 세력도 예전처럼 극성스러운 것 같지 않고 학내사안에도 많은 관심을 쏟는 것 같다”면서 “최근에는 이 두 용어가 반대 세력끼리 서로를 학생들과 괴리된 타자로 가두기 위해 쓰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총학생회칙 개정 총투표 참여를 호소하며 백양로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총학생회장을 가리키며 “따지고 보면 최근 우리대학교에서 논란의 대상인 저 회칙 개정 논의도 운동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비권으로 분류되는 우리대학교 총학생회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운동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이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처럼 학생들이 운동권과 비권을 인식하는 방법은 상당히 모호하고 불분명한 편이다.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대학생 의식 조사’를 실시했던 한준 교수(사회학·조직사회학)는 “과거에는 전대협, 한총련으로 대표돼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들의 수효가 많았고 그러한 조직에 많은 학생들이 공감했지만, 지금은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이나 이에 동조하는 학생이 많이 줄고 학생운동 집단 내에서도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학생운동을 넘어서 다양한 길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이런 모호성이 존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운동권, 비권의 이분법적 용어가 최근의 다양해진 학생활동을 포괄하기에는 부적절한 측면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직접적으로 분류 대상이 되는 학생회의 경우에도 이분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덕성여대 총학생회장이자 한대련 의장을 맡고 있는 김지선(일어일문·04)씨는 “비권은 학교에 부당한 문제가 있더라도 학생회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안된다고 규정하는 용어 같고, 운동권은 학생회가 학우들과는 괴리된 특별한 집단인 양 구분짓는 용어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상경·경영대의 학생회장 최하얀(경제·05)씨 역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도 자보, 강의실 홍보를 하면 운동권으로 부각되는 분위기 때문에 항상 조심스러웠다”면서 선거 활동 당시를 회상한다. 이어 “운동권이든 비권이든 학생회는 학생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각종 정책이나 행동력, 리더십 등으로 평가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정 ‘권’에 대한 반감이 학생회 자체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해 항상 눈치를 보고 활동해야하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또 서울대 총학생회장 한성실(미학·03)씨는 당선 확정 당시 자신의 당선을 ‘운동권의 부활’로 다룬 각 언론 매체에 대해 “그러한 편가르기식 인식은 특정 ‘권’에 대한 반감을 가진 학생들이 학생회 정책에 편견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이다”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한씨는 “실제 학생들이 닥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운동권, 비권과 같은 용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학생회가 얼마나 학생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활동을 하는지를 관심 있게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학생활동은 분명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특히 80~90년대처럼 학생회 주도로 학외 정치 사안에 대한 격렬한 투쟁을 벌이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학생들의 요구에 발맞춰 학생회 스스로도 변혁을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한씨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마다 학생운동은 계속 변화를 추구해 왔다. 사람들은 점점 대학생들이 무관심해진다고 말하지만, 학생들은 학생회의 정책에 대해 오히려 전보다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학생회는 운동권이냐 비권이냐를 떠나 많고 다양한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일궈 내는 것이 그 존재 이유다. 학우들은 이제 외부에서 강요하는 이분법적인 색안경을 벗고 학생회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지, 학생들의 삶과는 지나치게 괴리된 일에 관심을 쏟고 있지는 않는지, 집행력은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등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없는 학생회는 그 의미를 잃은 ‘그들만의 집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세한 기자 mightyd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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