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의 한·미 FTA 시위현장을 가다

 

지난 2006년 1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아래 한·미 FTA) 체결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그 이후 8차에 걸친 협상이 14개월 동안 진행됐고, 지난 2007년 3월 28일부터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최종협상이 시작됐다. 최종협상의 종료시한은 쇠고기와 자동차 등 핵심 분야에서의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아 기존 시한에서 48시간 늦춰진 4월 2일 새벽 1시까지로 연장됐다. 이 연장기간 동안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아래 범국본)를 필두로 한·미 FTA에 대한 반대운동은 절정에 달했다. 「연세춘추」에서는 지난 1일부터 협상이 타결된 2일 낮 1시까지 격렬했던 시위현장을 취재했다.

4월 1일 낮 1시
서울 하얏트 호텔 입구 기자회견장 앞

황사가 뿌옇게 서울 하늘을 뒤덮은 1일, 한창 최종협상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던 하얏트 호텔의 경비는 삼엄했다. 전·의경 5천여 명이 동원돼 입구와 진입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범국본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던 낮 2시경, 1백50여 명의 범국본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위해 입구로 진입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수차례 고성과 몸싸움이 오가고,  범국본측은 계속 확성기로 “기자회견을 보장하라”, “경찰이 왜 집시법을 위반하느냐”라며 항의했다. 결국 낮 3시10분이 돼서야 수백 명의 전경에 에워싸인 채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낮 4시, 경찰과 취재진의 눈이 기자회견장에 쏠린 사이 호텔 진입로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민주택시노조 조합원이자 참여연대 회원인 허세욱씨가 분신을 시도한 것이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몸에 불을 붙인 허씨는 전신에 3도화상을 입어 한강성심병원으로 후송됐다. 취재진이 빠져나간 기자회견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범국본 회원들은 기자회견을 중단하고 한강성심병원에 모인 뒤 예정된 촛불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4월 1일 저녁 7시
시청 앞 광장 촛불문화제
저녁 7시, 시청 앞 광장에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 하나둘 모였다. 총 2천5백여  명이 모인 이날 촛불문화제는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영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등이 연설을 했다. 정 감독은 연설에서 “한국 영화가 조금 흥행이 된다고 스크린쿼터를 절반으로 줄이고 더 이상 늘릴 수 없게 한 것은, 운전 잘한다고 안전벨트를 풀게 하고는 그 벨트를 잘라버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광고심의에서 문제가 돼 방송되지 못한 반(反)FTA 광고가 상영됐다. 사회를 맡은 범국본 정보선 문예팀장은 “정부측의 찬성광고는 아무 심의도 받지 않았는데 농민들이 쌀을 모아 힘들게 만든 광고를 사실상 방영금지 한 것은 엄연한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각종 문화공연도 이어졌다. 외국인 노동자 락 밴드 'STOP CRACKDOWN'의 보컬인 네팔 출신의 미누씨는 반(反)FTA 대열에 동참한 이유에 대해 “힘을 모으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세상이 힘 있는 자의 마음대로 결정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4월 1일 밤 9시30분
촛불문화제 이후 시청광장에서 청와대로
촛불문화제가 끝나가는 밤 9시30분 경, 사회자는 폐막을 알리며 “지금 당장 청와대로!”라고 외쳤다. 이에 참가자 2천5백여 명은 약속이라도 한 듯 청와대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을지로 방면으로 뛰면서 “한·미 FTA 저지”라는 구호를 계속해서 외쳤다. 그러나 시위대의 갑작스러운 도로 행진으로 많은 차량들은 가던 길을 급하게 멈춰서야 했다.
시위대의 행진은 약 20분후 경복궁 부근에서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과의 충돌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시위대는 그들을 막아선 경찰 버스를 향해 격렬하게 발길질을 하거나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등 흥분된 상태를 보여줬다. 그러나 일부 시위대 안에서는 경찰과의 몸싸움을 말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 후 시위대는 다시 방향을 돌려 세종로 쪽으로 나아갔고 이들을 막으려는 경찰들과의 숨바꼭질이 계속됐다. 
밤 12시 경, 시위대는 경찰과의 숨 막히는 숨바꼭질 끝에 사직동 동사무소 앞을 거쳐 청와대 근처인 종로구 신교동 서울 농학교 앞까지 진출했다. 경찰이 청와대로 가는 모든 길목을 막자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시위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체결 반대”를 지속적으로 외쳐 신교동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주민들은 시위대를 향해 물을 뿌리거나 직접 나와 이들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시위대의 외침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4월 2일 낮 1시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 (청와대 근처)
2일 낮 1시, 길었던 한·미 FTA 협상이 14개월의 진통 끝에 막을 내렸다. 이날 협상에서는 농산물, 자동차와 섬유 등 총 17개 분야의 논의를 완결했다. 이에 범국본은 낮1시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한·미 FTA 전면 무효화 선언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은 지난 1일과 같은 경찰과의 치열한 몸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범국본 상황실장 안지준씨는 “국민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은 퍼주기 협상은 무효”라며 “노무현 정권에 책임을 물을 것”라고 말해 이들이 한·미 FTA 무효화를 위한 본격적인 투쟁에 들어갈 것임을 짐작하게 했다.

 

타결된 한·미 FTA는 오는 6월까지 협정문 확정 작업을 진행 후, 양국의 최종 합의문 협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양국이 서로 국회 비준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어 언제 발효가 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범국본은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계속해서 촛불문화제를 열었고 7일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범국본의 시위는 ‘종속적인 협상’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해 감정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민 교수(상경대·경제발전론)는 “이번 한·미 FTA가 졸속으로 협의된 면은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우리 산업 제도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말을 이었다.
한·미 FTA는 분명 경제 성장의 큰 자극제다. 그러나 진정한 경제 성장은 개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적절한 산업정책이 뒷받침될 때 이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신인영, 정세한 기자 mightydu@
/사진 송은석, 윤영필 기자 holin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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