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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 비춰진 우리들의 불편한 속사정
  • 위문희 기자
  • 승인 2007.03.12 00: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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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단추가 열렸네. 채워라. 빨리.” 남편은 이방인 남자와 대면하는 아내에게 열린 단추를 채우라고 다그친다. 이에 아내는 황급히 단추를 채워 잠근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편과 이에 말없이 순종하는 아내. 김윤진과 대니얼 대 킴이 한국인 부부로 출연하는 미국드라마 『로스트』의 한 장면이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드라마에서 '한국’이 배경으로 설정된다거나 직접 한국인 또는 한국계 배우가 열연한 장면을 보면 그저 반갑기보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될 때가 많다. 화면 속 한국인의 이미지가 과장되거나 왜곡돼 표현될 때면 ‘한국인’으로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위의 장면은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묘사만을 담아내 한국인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로스트』에서 보수적인 한국인 아내 ‘선’ 역할을 연기하는 김윤진은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고정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로 캐릭터에 대한 적극적인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제작진은 최근 두 번째 시즌부터 한인작가를 영입해 한국인 등장 부분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 한국인

지난 2006년 개봉한 영화 『레이디 인 더 워터』는 바다 요정 ‘나프’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국인 모녀는 요정을 물밑 세계로 돌려보내는 임무가 벽에 부딪칠 때마다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평소 한국에 대한 신비감을 갖고 있었던 나이트 샤밀란 감독은 시나리오 집필 단계에서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를 참고했다고 한다. 따라서 영화의 설정대로라면 이야기는 한국의 전래설화를 닮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에 이와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정의 존재를 비롯한 영화 속 이야기 구조는 다분히 서구적이다. 동양을 신비롭게 이상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국적불명의 설화로 전락한 것이다. 또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인 모녀가 사는 집의 실내장식은 한국적이기보다는 중국적인 색채를 강하게 풍긴다. 김예지(사회과학계열·06)씨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전혀 한국적인 요소가 없는데도 ‘한국’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다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며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 아시아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묘사가 아쉽다. /일러스트레이션 석주희

사실 우리나라는 할리우드에서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설사 한국인 배우가 등장해도 가벼운 배역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우리대학교 외국인 강사들은 우리나라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영화로 『007 어나더데이』처럼 진중한 면이 적고 오락적인 요소가 다분한 것들을 꼽는다. 미국사회의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비춰지는 한국인은 주로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을 보이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렇게 왜곡되거나 과장돼 그려지는 한국인의 캐릭터는 서구 사회의 뿌리 깊은 문화적 편견을 보여준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상당수의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데 있다. 특히 한국인과 직접적인 접촉한 적이 없는 경우, 영화에서 비춰지는 단편적인 면을 통해 한국인에 대한 편향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한국인에 대한 고전적인 통념 외에도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인에 대한 문화적 편견을 여실히 드러낸 드라마가 있다.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김채연(정외·06)씨는 한국계 배우인 산드라 오가 열연하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꼽았다. 여기서 산드라 오는 남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고 인간미 없는 의사로 그려진다. 김씨는 “그들은 리더십이 강하고 적극적인 자기네들과 달리, 아는 것은 많지만 소극적인 아시아인에게 배타적인 자세를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미국 내에서 아시아인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실제로 이와 같은 편견이 두드러지는 추세다. ‘geeky’라는 영어단어는 ‘공부벌레 같은’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로써 공부만 하는 아시아권 학생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쓰인다. 아시아인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만을 과장하는 단편적인 묘사가 대부분인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서구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게 왜곡된 까닭은 무엇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차용되는 신비주의와 자극적인 묘사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어 흥행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을 보면 안개처럼 뿌연 분위기에서 극의 전개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연출이 암시하는 바는 ‘게이샤’라는 소재를 통해 일본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미국사회가 상상하고 보고 싶어 하는 동양의 신비주의가 영화 전반에 걸쳐 노출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 영화의 원작소설이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오른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미국학 특강’을 강의하는 이광진 교수(문과대·영어영문학)는 “미국은 아시아에 대해서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 환상과 동시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사회의 주류는 동양의 ‘무언가 모를’ 아름다움에는 솔깃해 하지만,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타자로서의 아시아’를 해석하려는 열의는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사회 내에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조성됐다면 우리는 역으로 발상해 볼 수도 있다. 대중문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오히려 사고의 폭을 쉽게 넓힐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아시아인에 대한 문화적 편견만을 부각시키는 프로그램이 난립한다면 당연히 시청자들의 사고는 편향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문화를 사실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풍부하게 조명한 영화와 드라마 등이 앞으로 양산된다면 오히려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인식의 제고가 이뤄질 수 있다. 물론 미국사회 내에서 올바른 다문화주의가 먼저 자리 잡아야만 할 것이다. 동양에 대한 서구적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활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문화 콘텐츠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문희 기자 chichanmh@yonsei.ac.kr

위문희 기자  chichanm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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