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장악한 강렬한 외침

 

“우린 친구 아이가...." 지난 2001년 전국을 부산사투리의 매력에 흠뻑 적시게 만든 이 말을 기억하는가? 『친구』의 다소 과격하지만 친근했던 대사들은 전국을 강타하며 대한민국을 부산사투리로 휩쓸었다. 과거엔 자갈치 시장, 해운대, 오뎅, 회 등이 ‘부산!’하면 떠오르는 키워드였지만, 이젠 『친구』에 나왔던 이런 대사들이 아닐까? 곽경택 감독, 장동건·유오성 주연의 『친구』는 부산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부산에서 자라고 생활했던 곽 감독은 자신의 유년과 청년 시절의 일화를 각색해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부산에서 모든 장면을 촬영했는데, 이는 국내 최초의 올 로케이션 시도였다. 『친구』는 당시 국내 영화사상 최단 기간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으며 부산 지역에 복고풍 의상을 유행시키는 등 각종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오늘, 『친구』를 시작으로『태풍』, 『올드보이』 등 국내외의 수많은 영화가 부산에서 촬영됐다. 또한 오는 10월, 12번째 생일을 맞이할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영화 축제로 발돋움했다. 따라서 ‘영화의 도시’ 부산의 다양한 영화 촬영 장소와 영화 산업을 지원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영화로 인해 문화를 만난 부산 시민들 몇 년 전부터 부산 전역에서 영화촬영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태풍』, 『올드보이』, 『태풍태양』 같은 한국영화는 물론 『착신아리 파이널』과 같은 해외영화도 부산에서 촬영이 이뤄진다. 특히 『친구』는 부산 시내와 골목에서 촬영함으로써 시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범일동 국제호텔 앞은 이동수(장동건 분)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이를 기념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7년 전 이곳에서 촬영했을 때는 여러 상점의 양해를 구하며 3일간 도로를 통제했다고 한다. 당시 상점들은 3일 동안 거의 영업을 하지 못했고, 시내버스도 노선을 바꿔 돌아갔으며, 시민들도 다른 길을 이용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뭐라도 들고 일어설만한 일이지만 놀랍게도 시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이곳에서 약국을 운영한 반묘령(68)씨는 “부산시의 지원으로 3일정도 국제호텔 앞을 통제했었다”며 “제대로 영업을 하진 못했지만, 학창시절을 되새기며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또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경선(62)씨는 “당시 유명 배우들이 이곳에서 촬영하고, 실제로 가게 앞에서 트럭이 넘어졌지만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고 긴장된 분위기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장동건씨가 생각보다 별로였다”고 전하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사실 부산은 과거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거주지였고, 그로 인해 치열하고 메마른 정서가 팽배했었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로 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 각박한 정서가 여유로움으로 점점 바꼈으며, ‘문화도시 부산’이라는 자신감을 얻기까지에 이르렀다. 부산은 그 자체가 영화촬영지!! 해운대의 중심, 해운대 해수욕장. 부산을 찾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쯤은 와 봤을만한 곳이다. 지금은 비록 늦겨울이지만 여전히 새하얀 갈매기들이 방문객들을 반기며 부산의 힘찬 기운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제 해운대는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영화촬영지로도 그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해운대에서 수영구로 통하는 광안대교. 이곳은 부산을 찾은 여러 제작사들이 한번쯤 영화 속에 담았던 명소이다. 여기서 10분정도 거리에 위치한 수영만 요트 경기장도 영화촬영지로 유명하다. 혹시 『태풍』에서 두 주인공의 바다추격신이 기억나는가? 서로 총을 겨누며 보트를 타고 광안대교를 지나기까지의 스릴 넘치는 장면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기자들이 당도했을 땐 영화에서의 요란했던 순간과는 달리, 고요한 바닷물이 요트들을 슬며시 적실뿐이었다.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 영화의 한 장면은 기지개를 펴며 태어났다. 부산의 심장부에 위치한 부산역, 그 맞은편엔 이국적인 분위기의 외국인 거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슬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와 어울리는 거리다. 한국인보다는 러시아인과 중국인이 많은 이 장소는『태풍』의 촬영지로, 주인공 씬(장동건 분)이 러시아인 코즈로프와 한 술집에서 밀담을 나누기 위해 찾는 곳이다. 붉은 조명 가득한 영화 속 러시아 선술집과 현란한 밤의 네온사인은 뒤이을 거사의 전야제에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실제로 찾아본 러시아 거리는 상해 거리라고 하는 게 좀 더 어울린다. 과거 중국인들이 세운 차이나타운에 러시아 선원들이 모여들어 하나둘 상점을 열었던 것이, 지금의 러시아 거리가 됐다. 굵어진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길가의 한 허름한 카페에 들어가려고 했다. 문 앞에 서있던 중년의 러시아 여성은 한국 화폐도 받느냐는 질문에 다짜고짜 카메라를 가리키며 ‘No Photo’ 라고 대답하고 손을 가로저으며 입장을 거부했다. 그 여인이 숨기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문득 밤에 혼자서 러시아 거리를 가는 건 위험하다던 택시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관광업소로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도 유흥업소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일지도.
 

 

 

 

 

 

 

 

 

 

 

 

 

영화 = 스탭 + 배우 + 경찰???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선 도로차단이라든지 통행제한 등 경찰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최근 부산에서 영화촬영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장소인 해운대의 해운대경찰서가 이런 상황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교통안전계는 도로 통행 제한을 비롯한 교통지도를 담당해 많은 도움을 준다. 교통안전계장 경위 박찬수(53)씨는 “영화촬영에 있어서 요구하는 건 웬만하면 모두 들어주는 방향”이라며 적극적인 협조를 하고 있었다. 또한 박 경위는 “『태풍』의 경우 교통량이 넘치는  광안대교를 3일 동안 전면 통제해달라고 요청해 불가능하단 결론을 내렸지만, 회의 끝에 부분 통제로 영화촬영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생활안전과는 다른 측면으로 영화촬영을 지원하는데 경사 이후봉(41)씨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경우 지구대 촬영을 요구해 사무실을 비워줬고, 경찰복이 필요한 상황에도 여러 번 대여해줬다”며 촬영에 최적의 여건을 조성해주고 있었다.

한국영화의 심장, 부산영상위원회

 최근 부산영상위원회(아래 부산영상위)의 활약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손이 열개라도 모자랄 만큼 많은 업무를 하며, 그에 따른 부산영상위의 가치도 부상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996년 시작돼 점차 국제적으로 유명한 영화제가 돼가는 1999년 어느 날, 부산영상위는 부산광역시장을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 박광수 감독을 1대 운영위원장으로 하는 창립총회를 가졌다. 그 후 부산영상위는 부산에서 이뤄지는 상당수의 영화촬영을 다방면에서 지원하며 부산이 세계적인 영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부산영상위원회 로케이션지원팀장 양성영씨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이 부산을 영화의 중심지로 만드는 촉발제가 됐고, 『친구』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더욱 많은 제작사들이 부산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산으로의 영화촬영을 확실히 유치하기 위해서는 제작사들에게 편하고 효율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에 있어서 부산영상위는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작년만 해도 백여 편의 국내외 영화들이 부산영상위의 협조를 얻어 부산 전역과 부산영상위 1층에 위치한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의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최근엔 『1번가의 기적』, 『복면 달호』가 부산영상위의 도움으로 촬영을 순조롭게 끝마쳤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부산에서는 영화촬영이 한창이다. 그 영화중엔 세계를 빛낼 국민영화도 있고, 사람들을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영화도 있다. 혹은 아쉬움 속에 사그라질 영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영화들은 적은 임금을 받으며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스탭들이 모여 이뤄낸 업적이다. 기자는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아무런 불평 없이 집채만한 세트를 홀로 세우는 한 젊은 스탭을 보며 한국영화의 미래는 밝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이 때 부산에서 촬영했던 『엽기적인 그녀』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우연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하늘이 놓아주는 다리입니다’
 이 대사에서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영화도시 부산’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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