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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진 세상에 미소 한스푼, 감동 한모금’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시사만화. 이에 대한 화려한 수식어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 주위의 주요 신문지상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 채, 신문의 다른 어떤 기사보다 현실을 얄밉게 비판하는 시사만화는 어느새 우리가 새벽에 종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신문을 받아들고 제일 먼저 살펴보는 인기 꼭지로 자리매김했다. 사회문제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데 ‘만화’라는 정감있고 느긋한 수단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권력층의 탐탁치 않은 심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특히 인물들의 과장된 행동이나 풍자적인 마지막 결론을 바라볼 때는 공격의 대상마저도 ‘허 그것 참!’하고 웃을 수 있게 한다. 특히 4단 만화는 보통 간결한 필치와 서민적인 캐릭터를 통해 그날그
미지정
김 우 현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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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가서 어떤 영화를 보려는데 누군가가 그 영화를 미리 본 후 ‘이것은 너의 정신 발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화니 봐서는 안된다’라고 길을 막는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황당한 질문에 웃어넘기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런 일은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사실 ‘18세 이상 관람가’ 등의 영화 등급을 매기는 영상물등급위원회(아래 등급위)의 출현은 정부가 개혁 의지를 다지며 영화계 창작자들의 끊임없는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번뜩이는 가위날로 사전심의를 해오던 공연윤리위원회가 지난 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게 되면서 정부는 우선 한국공연예술진흥협회라는 이름의 과도기적인 기구를 구성하고 사전심의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그 후 1년 6개월만에 ‘창작과 표현
미지정
김우현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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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 댁 곳간엔 없는 물건이 없었다. 떨어져 나간 문고리, 쟁기, 코뚜레, 호미, 자물쇠… 보물창고마냥 보였던 그곳이 도심 한복판에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다. 논현동에 터를 잡은 ‘최가철물점’의 ‘대장장이’ 최홍규씨가 만들어낸 투박한 문고리, 자물쇠들은 그 옛날 우리네 선조들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있다.철을 만진다고 해서 머리에 흰띠 하나 두르고 콩죽같은 땀을 흘리며 쇠를 두드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삭발한 머리, 차분한 옷차림의 최홍규씨와 민속박물관처럼 잘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철물점’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왜 철물점이라고 해서 고작 쇠 달구는 일을 하는 무식한 곳으로만 연상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실상 그는 ‘쇠’를 예술의 하나로 승화시킨 최초의 ‘
미지정
김문희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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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고 아직도 그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하게 됐다. 인간 스스로의 본성, 그것에 대한 성찰은 인간에게 있어 그치지 않는 하나의 화두가 되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화두는 인간이 지금까지 이루어 온 많은 것들(철학, 예술, 과학 등)의 바탕이 됐다. 자신의 본질을 알기 위한 필사적이고도 어찌 보면 어설픈 노력들이 인간의 역사를 이루는 근간이 된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은 그 본성에 대해 어느 정도는 억압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가령 동양의 유교 문화나 서구의 기독교 문화는 인간 자신의 몸, 즉 육체를 억압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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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세 진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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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1920년대초, 초현실주의(surrealism)를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화광이었던 그는 무성영화의 부자연스러운 연결(예를 들어 개가 갑자기 사라져버리거나, 기차가 지나가는 건널목을 순식간에 건너는 자전거의 형상)에 흥미를 느끼고,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대한 당혹감을 회화를 통해 정교하게 재생해내는데 힘을 기울였다. 1925년 최초의 초현실주의 작품 『혼미하는 기수』를 발표한 이래, 『마음의 공명』, 『빛의 제국』 등의 작품을 쏟아내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 그를 두고 당대 비평가들은 “병적인 미치광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작품은 우리 의식 가운데 내재한 비합리성을 파헤쳐 보인 가장 정직한 미술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지정
김우현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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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번 기획을 통해 ‘독점’, ‘통제’, 그리고 ‘안티파워’를 다룬 바 있습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은 항상 이의 발현을 가로막는 독점과 통제 아래에 놓이지만, ‘안티파워’라는 말이 나타내주듯 이에 저항하는 ‘반’문화·‘비’주류·‘탈’이데올로기 역시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등장하게 됩니다. 이번 기획은 지난번 기획의 연장선상에서 밀레니엄을 정리하는 단어로 ‘육체’, ‘유희’, 그리고 ‘매체’를 선택했습니다. ‘독점’과 ‘통제’ 아래에서 끊임없이 ‘안티파워’를 추구하는 인간은 산업사회 이후 그 의미가 억눌리고 왜곡됐던 ‘육체’와 ‘유희’에 대한 담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 인간이 자기 본성의 발현에 좀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도록 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매체’라는 개념은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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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집 부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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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베르톨루치는 그의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짐승처럼 으르렁거릴 뿐인 인간의 원초적인 몸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말론 브란도가 열연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몸을 통해, 늘 존재하지만 숨겨져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힘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그 힘의 열기에 관객은 자신이 발가벗겨진다는 느낌과 함께 마치 휩싸여 타버릴 것 같은 위험을 느낀다. 위태로운 노출을 피하고 감추려는 관객의 심보는 도덕적인 혹은 종교적인 혹은 사회적인 규율로 무장된 정신을 곧추세운다. 그러고보면 위태로운 노출이란 곧 숨겨져 있던 정신의 뿌리가 폭로됨을 지시한다. 정신의 뿌리는 몸이었던 것이다.수시로 근·현대의 ‘대대적인 불행’을 가져온 범인으로 지목되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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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광 제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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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산업혁명을 거치며 인류는 나름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지금, 1999년 10월 11일을 살아가는 우리는 역사에 있어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또 다른 공간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향기는 고도의 기술에 의해 묻히고 말것인가?’ 우린 이제 육체의 편리를 위한 기계 문명에의 의존적 자세에서 벗어나 자연 질서 즉 우주의 일부로서의 우리 자신의 몸을 새롭게 돌아본다. 정신·육체를 경계 짓는 서구의 이분법적 도식과 인간 육체에 기생하던 왜곡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몸에 대해 객관점 시각을 견지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성 중심적 가치관이 숭배되던 기존 인식 속에서 ‘육체’를 한 인간의 가장 직접적이며 상징적인 코드로 주목해 온 우리대학교 마광수 교수(문과대·국문학)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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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희·김혜연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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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벌거벗고 거울 앞에 서보라. 자신의 육체가 맘에 드는가? 하지만 그것이 자신만의 생각이고 타인들이 당신을 볼품없는 인간이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평가를 자주 듣는다면 당신은 이미 타인과의 경쟁에서 상당히 열세에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마주치게 될 당신의 수많은 경쟁자들보다 조금이라도 우위에 서고 싶다면 지금 당장 미용잡지라도 한권 구입하라.헬스클럽에 가본 적이 있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헐리우드 액션영화배우 같은 근육질의 사나이들을 양산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이곳은 자신의 육체적 왜소함으로 인해 사회에서 패배한 자들의 처절한 전쟁터다. 그들은 단단한 근육과 탄력있는 몸매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자신과의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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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기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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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놀기를 좋아하는 유형일까, 일하기를 좋아하는 유형일까. 때때로 이와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한가’와 같은 질문처럼 인간의 본질규명과 관련된 문제는 늘 해답을 얻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럼에도 ‘유희’와 ‘노동’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은 존재해 왔고 시대마다 지배적인 인간관이 있었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던 18세기에는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했고, 산업사회 이후에는 ‘호모 파베르(만드는 인간)’가 설득력을 얻었다. 그 후 저명한 문화사가인 J.호이징하는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제시, 인간의 본질을 새롭게 규정했다. 그는 지나치게 노동의 가치만을 중시하는 사회현상을 비판, 심리학·언어학·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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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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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개념은 흔히 탈정치적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놀이문화와 그 시대상황을 추이해 보면 그 둘 사이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놀이문화는 정치상황을 비롯한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70년대 ‘잘 살아보자’라는 구호 아래 국민들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으로 대변되는 경제 살리기 운동에 동참한다. 우선 경제가 살아야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시민들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즐기는 문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배부른 자에게 국한된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던 것이다. 따라서 놀이를 즐긴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80년대 초반 놀이문화는 전두환 정권 당시 ‘국풍 시리즈’로 일컬어지는 정부 주도의 문화적 열기 조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군사정부의 입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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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호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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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기 싫은 사람, 공부하기 싫은 사람 모여라~ 저녁까지 놀아보자 밤새도록 놀아보자 모여라~’한때 ‘특이한’ 가사로 통했던 노래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생각은 특이하고 일탈적인 발상일까? 이 가사를 특이하다고 느꼈던 것은 매일 학교를 가야하고 직장에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에 메어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논다’라는 개념을 ‘일한다’와 상반되는 재충전의 시간 쯤으로 인식해온 기존 경향에 반기를 드는 단체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국백수연합(아래 전백련)’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나 들음직한 이 이름은 지난 98년 조직된 실존하는 단체의 이름이다. “양심적인 백수(백조)들의 놀이마당입니다”라는 전백련의 소개에서 느껴지듯 그들은 ‘일없음’에서 절박함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여유를 찾는다. 이들은 실업을 실업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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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김동균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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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있다. 여름 내내 일한 개미는 추운 겨울에도 생존을 보장받고, 놀고 지내던 베짱이는 굶어죽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의 개미와 베짱이는 이와는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개미는 노역에 시달리다가 허리 디스크에 걸린 반면, 베짱이는 최신곡이 히트하여 잘 나가고 있다. 또 어떤 베짱이는 겨울 동안 따뜻한 방에서 심심해하는 다른 곤충들에게 여름 동안 보고 들은 자신의 경험으로 특강을 베풀며 삶을 즐기고 있다. 위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한 시대의 변화상이 상징적으로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원활하게 작동시켜왔던 노동, 근면, 절제, 저축이라는 생활 윤리가 담겨있고, 후자의 경우에는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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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문 겸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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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전국 모든 기관의 행정업무에서 전자주민카드가 사용됩니다. 전자주민카드의 도입으로 더 빠른 행정처리가 가능해 시민들의 생활에 많은 편의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7시 TV 뉴스 소리에 잠을 깼다. 새로 받아온 전자주민카드는 예전 것과는 달리 세련되어서 굉장히 맘에 든다. 이걸 가지고 왜 시민단체에서는 그렇게 난린지 모르겠다. 한꺼번에 여러 정보가 나오면 더 편리한거 아닌가? 정부가 새 정책을 발표했단다. 대체 어떻게 저런게 통과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여튼 우리 정부는 저 모양이라니까. 컴퓨터를 켜고 통신에 들어갔더니 익명게시판에 벌써 새 정책에 관한 글들이 올라와 있다. 나도 글을 올렸다. 좀 심한 말이 많이 섞였지만 뭐, 익명게시판이니까 누가 썼는지 아무도 모르겠지. 공강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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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진·박주희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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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동굴 안. 그 어둠을 밝혀주는 것이라고는 손에 들려있는 타오르고 있는 횃불 뿐. 오늘 수풀 너머에서 근엄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던 황소의 모습을 애써 기억해내며 동굴 벽에 날카로운 돌로 그 기억의 흔적을 남긴다. 이렇게 남겨진 흔적을 후에 누군가가 볼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그 후로 수천년이 흘렀다. 이제 더 이상 동굴 속에서 살아가는 이도 없고 횃불 대신 머리 위에선 형광등이 빛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땀흘려가며 황소의 모습을 새기던 인간은 이제 ‘이상하게’ 생긴 기계 앞에서 수십개의 버튼을 눌러가며 모든 일을 해낸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도, 정보를 얻는 것도, 심지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도 인간은 그 기계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인간의 ‘매체’는 이렇듯 혁신적인 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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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영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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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지식 수준을 높인 것은 기록할 수 있는 활자매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하는 지금, 매체의 발달은 활자매체의 소멸이라는 위협을 주고있다. 아니, 우리는 그것을 위협으로 느끼지 못하고 산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정보를 마우스 클릭 하나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편의에 길들여져 있으니까. 소설가 박경리씨는 “이별·죽음과 같은 우리의 정서적인 면이 남아 있는 한 활자매체는 존재할 것”이라는 말했다. 과연 정서는 문명의 흐름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변화하는 신문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말이 있다. 신문은 ‘지면’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가장 많이 탈피하고 있는 활자매체다. 인터넷상의 신문사 홈페이지를 클릭하며 신문을 읽는 독자들. 이제는 드라마를 통해 보여지는 바쁜 셀러리맨의 모습이 아닌 평범
미지정
홍해인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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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정
이준선 기전공학부1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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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여성제가 지난 4일부터 닷새 동안 개최되었다. 여성자치모임들이 주최가 되어'공간'을 화두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지난 97년에 개최된 1회보다 좋았다는 평가를받았다. 사진은 지난 4일 민주광장에서 개막제를 준비하는 모습
미지정
김경선 기자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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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정
남정민
1999.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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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정
남정민
1999.10.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