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 입시제도와 학벌

2004-09-05     연세춘추

최근 교육부는 교육혁신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오는 2008년부터 실시될 새로운 입시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 안은 내신과 수능을 9단계로 나누고, 대학별 선발의 자율성 부여를 골자로 한다. 이번 안은 한국 중등 교육의 현실과 입시제도, 그리고 한국사회의 학벌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를 나름대로 인식하고 이에 대해 무언가 개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학벌구조, 대학의 고착화된 서열, 중등교육의 붕괴라는 심각한 사회 및 교육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안은 역부족이라고 평가된다. 내신과 수능을 9단계로 나눠 학생 개인별 서열화를 둔화시킨다고 하나, 소위 유명대학을 중심으로 대학별로 본고사가 부활돼 학생 개인에 대한 서열화가 중고등학교의 서열화로 바뀔 위험을 안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간 유지돼왔던 고교평준화의 기본틀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기존 입시제도에서도 소위 유명대학들이 논술이나 심층면접을 실시하고 고교들에 나름대로 등급을 매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위험은 대단히 높다. 더구나 입시개혁안에서는 내신, 수능, 그리고 대학별 고사가 복합돼 입시제도를 더욱 파행적으로 만들고, 자금과 정보가 뛰어난 강남 중심의 부유층 자제에게 우위를 부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은 단순히 교육의 수준을 나타내주는 차원을 훨씬 넘어 권력, 돈, 명예를 나누고 신분을 결정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학벌과 학력은 주로 대학의 고착화된 서열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이유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살인적인 입시경쟁은 중등교육을 황폐화시켰고, 대학교육마저 공동화되고 있다. 이 여파로 사교육비의 급증, 조기 해외유학, 부동산 가격의 이상 변동, 청소년의 좌절과 자살 등이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차원에서 학벌차별을 타파하기 위한 법안과 한시적인 인재할당제가 필요하다. 또한 대학 차원에서는 고착화된 서열을 타파하기 위한 국공립대 평준화 등 대학 평준화 혹은 대학 서열의 대폭적인 완화가 요구된다. 끝으로 수능을 폐지하고 내신에 의존한 대학생 선발을 전면적으로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대학입시를 고교 졸업자격시험으로 대체해야 한다. 적어도 대학의 서열타파가 병행되지 않는 한 어떤 대입제도 개혁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교육부의 안도 고심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런 점에서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현재 중고등학교의 교육이 정상이 아니라는데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다. 또한 현재의 대학교육이 중심을 잃었으며 대학의 연구 또한 외국에 대한 극도의 의존도로 허덕이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학벌구조와 대학서열, 입시교육이 타파되지 않는 한 극복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므로 특정 계층이나 특정 대학을 염두에 두지 말고 우리의 청소년을 구하고 교육 및 국가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교육 및 사회에 대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담론의 장과 이에 근거한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보다 입시의 피해자이자 수혜자인 대학생들이 이 일의 선봉에 나서야 한다.

/경제학과 홍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