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보며

오전 8시,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인수(가명)씨와 이명근(가명)씨도 출근 준비를 마쳤다. 작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분주함은 36년째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노점 상인의 수가 약 4만 명이다. 이 숫자는 정부가 지난 2021년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파악한 것이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아래 민주노련) 김두환 대외협력실장은 “실제 인원은 4만 명을 훌쩍 넘을 것”이라며 “자리를 옮기며 일하는 분들을 정부가 정확하게 집계할 수 없기 때문에 파악하지 못한 인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간 노점상의 존재는 불법으로 여겨졌다. 노점상은 ‘노점 및 이동 판매원’으로 통계청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등재돼 직업코드번호 53220번을 부여받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사는 ‘불법 노점상’을 다룬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법의 테두리 어딘가 모호한 영역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수많은 정씨와 이씨도 그렇다. 그렇기에 기사는 이들의 삶과 노동을 온전히 바라볼 때 우리 사회가 안녕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한다.

 

 

제도가 노점상을 ‘불법’으로 여기는 동안
노점상은 오해와 낙인 속에서 버텨왔다

 

국가는 불법 노점상을 근절하고자 노점상 관련 제도를 정비해왔다. 지난 2009년 서울시는 ‘노점관리대책’을 발표했다. 박원순 시장 임기 때는 앞서 언급한 대책의 명칭을 ‘노점가이드라인’으로 변경하고 각 지자체의 노점정책 기준을 제시했다. 서울시는 노점상의 허가 기준으로 ▲재산규정 ▲거주지 제한 ▲계약 기간 등의 조건을 세웠다. 재산규정 항목은 본인 및 배우자의 재산을 합산해 4.5억 원 이하의 재산을 보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거주지 제한 조건은 해당 지자체에서 거주하는 국민에게 노점 운영 권한을 부여한다. 이에 각 지자체는 1년마다 계약 갱신을 통해 노점상의 허가 기준 충족 여부를 심사한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서울시의 정책은 각 지방 도시 노점정책의 기준이 되면서 전국으로 확산하는 양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불법’을 근절하기 위한 단속도 이어졌다. 한국도시연구소 김준희 책임연구원은 지난 2011년도 논문 「도시공간과 노점상의 권리에 관한 연구: 1980년대 노점상 운동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에서 ‘노점상은 통행 장애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부의 지속적인 단속 대상이 돼왔다’고 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인터뷰를 통해 단속의 특성을 짚었다. “지난 1988년 올림픽 이후 거리 미관을 이유로 노점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는 노점상을 등록 노점상과 미등록 노점상으로 나누며 포섭과 단속을 병행했다.”

단속과 제도 정비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2021년 서울시에서 발간한 ‘상생·공존을 위한 '21년 거리가게 허가제 사업 추진계획’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등록된 노점의 비율은 전체 노점상의 29.3%에 불과하다. 이씨는 “허가제도는 실효성이 없다”며 “허가 기준이 높아 등록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원도 정책의 허점을 짚었다. “허가제에는 노점을 우리 사회에서 없애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허가제’를 도입하며 노점의 총량을 정해놓은 것이다. 허가받은 노점상은 삼진아웃제* 등으로 인해 점점 줄어든다. 이는 노점 상인을 퇴출하기 위한 제도에 가깝다.” 

무엇보다 노점 상인들을 괴롭게 하는 건 이들에게 덧씌워진 낙인이다. 정씨에게 이 낙인들은 사실이 아니기에 “더없이 불편하다.” 김 실장은 “노점 영업을 끝내자마자 벤츠를 타고 집에 가는 이들이 있다는 소문이 ‘귀족 노점’이라는 근거없는 편견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범법자라는 낙인을 찍는 경우도 있다. 전 전국노점상총연합 연대사업국장 이반의경씨는 칼럼 ‘‘불법’ 노점상은 생존권을 포기해야 하나?’에서 ‘일부는 노점상들을 ‘탈세를 목적으로 도로를 무단점거하는 범법자’라는 프레임으로 규정하며, 정책적 방법을 동원해 (노점상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이런 낙인찍기에는 오해가 얽혀있다. 세법상 노점상은 면세 대상으로 분류돼 ‘탈세’가 성립할 수 없다. 「소득세법」은 노점상의 세금계산서 발급 의무를 면제하며 「지방세법」 역시 이들의 지방세 납세 의무를 면제한다. ‘귀족 노점’이라는 낙인에 반해 노점상의 수입은 적은 편이다. 지난 2014년 민주노련이 시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점상의 월 평균 수입은 130만 원을 겨우 웃돈다. 김 실장은 “3·4인 가구가 온전히 노점 상인 한 명의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정씨는 어렵게 말문을 뗐다. “예전에는 겨우 먹고 살 정도는 됐지. 그런데 지금은 아냐. 코로나19가 지나가면서 겨우 살아있는 수준이야.” 

소득은 지난 2년간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줄어들었다. 빈곤사회연대가 지난 1월 13일 노점 상인 1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코로나19 시기 노점상의 소득 감소와 삶 그리고 대안」(아래 노점상 설문조사)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월평균 노점 운영 소득이 줄었는가’라는 물음에 101명(96.1%)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 중 32명(30.3%)은 소득이 줄어든 탓에 월세나 관리비, 공과금 등을 체납했다고 답했고, 25명(23.2%)은 병원을 이용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김 활동가는 “노점상은 재난의 여파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정부 지원책은 미비했다”고 말했다. 

단속의 수단이 되는 법률이 제재 근거로 부적합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실장은 “노점상 단속의 근거 법률인 「식품위생법」(아래 식품법)이나 「도로교통법」(아래 도로법)은 노점상을 처벌할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식품법은 식당 혹은 기업을, 도로법은 가로수나 자재 등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법 적용이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합법과 불법의 기준이 아닌, 등록과 미등록의 기준으로 노점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등록 노점상은 불법 노점상이 아니라 단지 등록하지 않은 노점상이라는 의미다.

노점상을 얽어매는 낙인은 이들의 삶과 노동을 가린다. 이 낙인을 걷어내면 노점상의 노동이 온전히 보이기 시작한다. 이씨는 노점상을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추운 노동”이라며 “뜨거운 불판 앞에서 선풍기 하나 없이 버티는 여름이 가장 힘겹다”고 말했다. 노동 시간도 상대적으로 길다. 노점상 설문조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영업시간이 짧아진 노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설문에 참여한 노점 상인들의 하루 영업시간은 짧게는 7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까지 매우 길게 이어진다. 준비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노동 시간은 훨씬 길다’고 설명했다. 

 

사회가 이들을 아래로 밀어내더라도
노점상의 노동은 이어진다

 

낙인은 노점상에 대한 차별을 만들었다. 차별로 인해 노점상의 존재 자체가 설 자리가 없다. 여러 차례 노점 상인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김 활동가는 말했다. “누가 도시 내 공적 공간을 점유할 것인지 경쟁이 벌어진다. 노점상 차별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공적 공간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빈민들을 얼마나 불법으로 내모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철거와 단속은 노점상을 밀어내는 결과만 만들지 않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노점상의 존재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인식 자체를 변화시킨다.”

이들의 노동이 불법으로 여겨지는 동안 노점 상인은 복지제도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김 활동가는 “노점상은 복지 사각지대의 다른 이름”이라며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소득과 재산을 기반으로 한다. 가구 단위, 한 달 소득, 자산 규모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노점 상인의 경우 같은 기준으로 복지제도를 논할 수 없다. 일반적인 형태의 노동이 아니기에 국가가 소득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점 상인들은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된다. 실업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지역 가입자 신분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건강보험료 역시 실제 소득보다 과도하게 책정된다.” 

불법과 합법의 잣대만으로 노점상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노점상을 둘러싼 구조적 차별을 직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활동가는 "모두가 애초부터 노점상을 하려고 해서 한 것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노점상이 된 이들이 있다" 고 말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노점상을 선택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땅히 할 일이 없던” 이씨는 상경한 직후 노점상을 택했다. 노점 상인 다수가 이씨와 유사한 동기를 지녔다. 지난 2014년 민주노련이 645명의 노점 상인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노점 상인들은 사업실패(37.3%), 해고에 따른 실업(22.3%), 이농(21.9%), 지병(18.3%), 기타(0.2%)의 이유로 노점 상인이 됐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이들을 비공식 부문으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구조적인 분석을 덧붙였다. “노점상은 IMF 금융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 사회적 위기와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대부분 자영업을 할 여력조차 없는 사람들이 노점상업을 택한다. 밀려나다 보니 노점상을 하게 된 것이다. 노모를 모시거나 부양해야 하는 경우, 정규 노동시장에서 유동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직장을 찾을 수 없으니 노점상을 전업으로 택하기도 한다. 모두 처음부터 노점상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노점상 점주가 고령이라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김 책임연구원은 우려를 표했다. “노점 상인 중 ‘일반적인’ 노동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이 많다. 이 사람들은 민간일자리에 취업하기 매우 어렵다. 공공일자리도 마찬가지다. 노점을 그만뒀을 때 다른 일을 구할 수 없는 분들이 노점을 운영한다.” 

노점상의 노동이 자발성을 띠는 역설적인 경우도 있다. 김 활동가는 “모든 노점상이 ‘비자발적으로’ 노점상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초 생활 수급 제도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노점상을 통해 노동 전선에 뛰어든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도 비슷한 맥락에서 덧붙였다. “노점상은 별다른 노동 대안이 없는 이들에게 주어진 좁은 길이다.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모든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긴 어렵지만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들에게는 노점상을 통해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이 노동은 자발성이 매우 강하다.”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노점상의 존재에 주목한다면

 

제도가 노점상의 존재를 품지 못해 그것을 불법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젠 제도가 이들의 존재를 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간 사람들은 노점상의 존재를 사적 이익의 측면에서만 바라봤다. 하지만 이제 노점상의 공적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실장은 말했다. “노점상은 인근 상권을 활성화한다. 일례로 종로는 사람들이 예전만큼 찾지 않아 건물이 많이 비어있다. 그러나 노점상이 거리에 있었을 때는 상권이 활발했다. 또 노점상은 풍물적인 기능이 있다. 보행자에게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도로 공간을 다채롭게 만드는 셈이다.” 

노점상의 존재가 공공성을 지닌다면 국가가 이들을 지원할 이유는 충분하다. 노점상의 존재를 인정할 때 노점상은 사회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람이 재기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는 의미다. 김 실장은 말했다. “노점은 밀려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노동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점상이 없어질 순 없다.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빈곤 해결의 사회 안전망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노점은 빈곤층이 돈을 모아 가게를 차리거나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하는 등 일종의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씨는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길 바란다. 이 법안은 지난 1월까지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입법청원에 성공했다. 법안에는 ▲노점관리대책 중단 ▲과태료 액수 기준 및 주기 제한 ▲전통시장 노점상 보호 ▲통행권 확보·위생 관리 등 자율 질서 사업 추진 ▲갈등 해결 및 대안 마련을 위한 노점상생계대책협의회(가칭) 신설 등이 포함됐다. 김 실장은 “지금은 입법청원에 성공한 후 법안을 다듬는 중”이라며 “올해 하반기 입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점상을 사회적 주체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법안의 핵심이다. 김 실장은 “지금껏 노점상은 협상의 주체로 인정받은 적이 없었다”며 “법안은 노점상이 관련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노점상의 권리를 확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점상을 둘러싼 문제들이 공론화되면 노점상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처우 개선보다 인식 변화를 더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점상에 대한 상생의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 실장은 “국가는 대책 없는 단속을 거두고 실질적인 상생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 역시 “노점상에게 필요한 숙련을 갖추는 데 투입된 시간이 있을 것”이라며 “일방적인 단속의 시선을 거둬야 본격적으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제 정치가 응답할 차례다. 정치의 역할은 이 포괄적인 밑그림을 염두에 두고 논의의 장을 여는 것이다. 노점상의 상생을 위한 대안이 우리 사회에서 마련된 적이 그동안 없었기에, 이 법안은 이씨에게 “투쟁의 역사이자 결과물”이다. 김 활동가는 “현재 법안의 구체화를 위해 국회의원을 섭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이씨가 가장 바라는 바는 “마음 편히 장사하는 것”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말했다. “노점 상인들이 도로점용료를 내기 싫어서 기존 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에 수긍하면서 국가에 개인정보를 제공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노점을 낙인찍고 단속하는 목적으로만 개인정보를 이용했었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감이 크다. 노점상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노점상의 노동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글 박경민 기자
lightmiin@yonsei.ac.kr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 삼진아웃제: 정부는 제시한 노점 운영 규칙을 3회 이상 어길 시 노점의 허가를 박탈한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