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을 혹시 아는가? 사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이름. 사진 찍는 사람들이 구본창을 모른다면 필시 그 사람은 ‘간첩’일 정도로, 사진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다만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사진을 단 한 장도 보지 못한 사람이 과연 국내에 존재할까? 영화 『댄서의 순정, 『죽어도 좋아』, 『취화선』, 『밀애』 등의 영화 포스터 작업, 패션 사진작업, 순수 예술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예술과 상업 두 분야에서 모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진가 구본창(경영․71). 그는 우리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동문이기도 하다. 분당에 위치한 구 동문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조선 백자, 슬픈 미소를 짓다 인터뷰 장소에는 그가 가장 최근에 전시한 백자 사진들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현재 뉴욕 헤이스티드 헌트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그의 백자 사진들은 지난 7월에 서울 사간동 국제 갤러리에서 ‘마음의 그릇(Vessels for Heart)'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됐던 작품들이다. 백자 사진들을 찍기 위해 전세계를 누볐다는 말에서, 이번 전시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자사진을 찍게 된 계기를 묻자 “일본 잡지에 실린 백자 사진을 보며, 일본 사람들은 백자를 멋있게 잘 찍는데 왜 정작 한국에서는 제대로 찍은 백자 사진이 없을까 안타깝게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구 동문의 사진에 나타나 있는 백자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상처투성이다. 금이 가 있고, 이가 빠져 있는 등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구 동문은 “마치 백자들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 같지 않아?”라고 물으며, 피사체에 품은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많은 사진평론가들은 구본창 동문의 사진을 보고 ‘슬프다, 애잔하다, 뭔가 비어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위와 같은 비평에 대해 구 동문은 “유년 시절의 성장 과정과 기억들이 사진에 투영돼 애잔함을 자아내는 것 같다”며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듯이, 어릴 적 자라온 환경이 전 생애에 영향을 주지 않는가?”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원래 미술을 좋아했던 구본창 동문. 동성중학교를 다닐 때 미술반 활동, 연세대학교 시절 화우회 활동 등을 통해 그의 관심사가 미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대 진학을 꿈꿨던 구 동문의 바람과는 달리, 섬유회사를 경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경영학과에 진학하길 원했다.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그는 대기업에 입사해 근무하게 된다. 회사가 맞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독일로 발령이 났고, 그는 독일에서 미련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 들어갔다. 구 동문은 바로 여기에서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사진 찍던 친구와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활동하다가 사진기를 잡게 됐다”고 회상하던 그는 독일 생활이 매우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의 독일은 한국과는 다르게, 타인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어. 난 그저 그들에게 동양에서 온 한 사람일 뿐이지. 그러니 나도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그렇게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됐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필름살 돈이 없어 가족들, 형제들에게 돈을 꾸러 다녀야했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사진과 관계없는 일들도 닥치는 대로 했다. 중도에 사진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일본의 한 전시회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들은 미국 작가들의 말이 그에게 용기를 줬다. “당신이 미국에 온다면 우린 모두 굶어죽을 거다.” 때마침 서울고-연세대 동기인 배창호 감독의 영화 포스터 촬영을 시작으로, 그는 본격적인 예술활동에 들어갔다. 기존의 한국 사진들과 판이하게 다른 그의 사진들은 한국 사진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사진작가 구본창은 사실적인 표현에서만 맴돌았던 한국 사진계에 구성주의, 만드는 사진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선구자가 된 것이다. 이후로 구 동문은 한국 현대 사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당신, 제발 미국에 오지 마라”


단순히 예술 사진에만 그치지 않는 구 동문의 활동 반경은 매우 넓다. 영화 포스터 촬영, 패션 화보 등 상업 사진에 이어 신경숙 작가와 함께 만든 포토 에세이 『자거라 네 슬픔아』, 최인호 동문과 함께 작업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구 동문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경험을 한다는 것을 소중한 기회로 여긴다”며 다양한 활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구 동문은 고심을 거듭하다가 “아버지의 얼굴을 찍었던 사진”이라고 답했다. 임종 직전의 아버지 얼굴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었을 때 굉장히 어렵고 망설여졌다는 구 동문. 가장 어려웠던 촬영 상황이었던 만큼, 가장 기억에 남았으리라.

사진가에게는 대상과의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구본창 동문. 피사체와의 교감이 없다면 그 사진에 혼이 있을 리 없고, 에너지 또한 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사진은 촬영자와 피사체가 나누는 대화의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사진에는 이야기가 느껴져야 해. 그래야 매력 있고. 내가 생각하기엔 그런 이제는 한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구 동문의 사진. 지금도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한 감정, 원치 않은 길을 가야 했던 아픔, 행복했던 독일 유학 생활, 한국으로 돌아와서의 힘든 삶 등 그의 생애가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있다. 마치 한 롤의 필름에 사진을 한 장 한 장 채워 넣는 것처럼. 앞으로 그의 사진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남아 있는 필름에는 어떤 사진이 채워질까? 앞으로 그가 펼칠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 본다.

 

 

                                                         /사진 송은석, 윤영필 기자 insomnia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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