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모 회사의 광고 장면. DJ와 비트박스, 비보이의 춤과 함께 「캐논 변주곡」을 선보였던 가야금 연주단을 기억하는가? 퓨전문화로 많은 호응을 얻었던 이 광고는 현 예술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최근 장르를 넘나들고 있는 문화 현상을 우리는 흔히 ‘퓨전’, 혹은 ‘크로스오버’라고 부른다. 그 중 가장 한국적인 미의 대표 격인 국악에도 이러한 크로스오버의 바람이 불고 있다. 힙합, 비보잉, 가요, 클래식, 재즈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연극과 뉴에이지와도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국악. 새로운 국악으로 떠오른 퓨전국악을 들여다보자.

퓨전국악의 도래와 성장

우선, 질문거리를 하나 던지자면, 퓨전국악은 국악계의 자구적 돌파구일까 아니면 크로스오버 문화의 한 산물일까. 예술인이 소리를 창작하고자 하는 욕구는 같다. 그렇다면 서로의 것을 차용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국악을 전공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도 자신이 들은 발라드, 재즈 등 서양음악이 있기에 퓨전을 통해 그것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아홉명의 음율이 하나가 된 크로스오버국악밴드 '그림' /송은석 기자 insomniaboy@yonsei.ac.kr 사실 몇 년 전부터 전통국악의 편곡‧연주 등을 시작으로 퓨전음악으로의 시도는 있어왔다. 그러나 최근 젊은 세대의 국악은 이전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던 다른 장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국악으로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그것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6년째 크로스오버국악을 하고 있는 ‘그림(The林)’의 신현정씨는 “그동안 시도된 많은 퓨전들이 축적돼 오다가 갑자기 확 계단식 성장을 한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많은 음악인들이 각자 자기만의 음악을 계속 해 오다 보면 새로운 개량악기도 나오고 또 독창적인 음악이 탄생되는 것이다. 무대에서 국악만, 특히 연주곡만 진행하면 지루하니 거기에 스토리, 영상, 연기 등의 요소를 넣어 아예 하나의 극을 만들기도 한다. 멈추지 않는 퓨전국악의 확산 한편, 요즘에는 다른 장르에서도 국악에 관심을 보인다. 지난 5월, ‘제27회 서울연극제’ 대상을 탄 『아름다운 남자』와 얼마 전 막을 내린 『왕세자 실종사건』은 국악 연주와의 접목을 시도했다. 그리고 ‘스톤재즈’라는 팀 역시 국악에 대한 러브콜을 보내 크로스오버음악을 만들어낸다. ‘스톤재즈’의 이원수씨는 “여러 양악 사운드를 실험해 보다가 국악과의 교감을 느끼고 싶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게 됐다”며 퓨전의 계기를 설명한다. 퓨전국악이 높은 호응을 얻은 것은 다름 아닌 ‘대중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전통국악을 추구하는 국립국악원에서도 국악의 대중화에는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부터 퓨전국악을 하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도 그동안 유명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의 광고에 참여한 ‘숙명가야금연주단’도 이미 지난 1998년에 창단됐지만 올해의 그 광고로 인해 비로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공연상품으로서의 국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림’의 신창렬씨는 “대중매체를 통해 먼저 보고 익숙해지는 세대의 풍토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렸을 적에는 먹지 않던 음식도 성장하면서 먹게 되듯이, 일단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전통국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퓨전국악에도 안티가? 이처럼 각광을 받고 있는 크로스오버지만, 이를 바라보는 몇몇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 중 일각에서는 ‘국악의 상업화‧상품화’라는 의견이 있다. 신씨는 “우리는 사실 아직 그런 상업화를 피부로 못 느낀다”라면서 “그러나 상업적인 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너무도 유명한 PMC프로덕션의 ‘난타’가 그 사례가 된다. 창작 공연문화로 시작해 지금은 하나의 수출상품까지 된 이 작품은 크로스오버국악이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서도 새로운 컨텐츠의 등장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숙명가야금연주단’의 박은경씨는 “그 광고의 시도가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통을 버리는 것은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처음 퓨전국악이 나왔을 때는 보수층의 반발이 거셌다. 몇 년 전 MBC의 ‘퓨전콘서트-가락’이라는 프로그램은 그 참신성으로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지만 전통을 고집하는 거센 입김에 밀려 중도하차하기도 했다. 또 어느 음악평론가는 가야금으로 캐논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산조도 아닌, 캐논도 아닌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국악평론가 윤중강씨는 그의 저서에서 ‘전통 연주법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도전정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음악은 산조도 아니고 캐논도 아니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 동서양의 문화가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크로스오버밴드 'Stone Jazz' /송은석 기자 insomniaboy@yonsei.ac.kr

퓨전, 앞으로가 중요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매력을 던지고 있는 퓨전국악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조심스러운 의문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과는 또 뭔가 다른, 좀 더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진지한 고민을 해 좀 더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윤씨에 의하면 20세기가 민족음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세계음악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적 퓨전현상도 지구촌의 의식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퓨전국악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경향이고 음악 발전에 있어서는 하나의 진행과정이다. 양악과 국악의 악수는 굳건하다. 개인 취향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이제는 그들과도 사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 퓨전은 국악의 한 부분이 됐고, ‘부분(퓨전)’은 ‘전체(국악)’를 닮아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퓨전도 국악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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