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인류에게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말라면 더 보고 싶어 하는’ 청개구리 심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엿보기 심리로 인해 일어나는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가 있다면, 옛날에는 엿보기 심리 때문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아래에 ‘엿보기’ 심리로 인해 벌어진 여러 가지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소개한다.

   
▲ 고디바 부인의 희생과 관음증 간의 관계/네이버 자료사진

Peeping Tomism?!

 11세기 영국 중부지역 코벤트리(Coventry)의 영주 레오프릭은 농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과중한 세금으로 힘겨워하는 농민들을 불쌍히 여긴 영주의 부인 고디바(Godiva)는 남편에게 농민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줄 것을 청원한다. 계속되는 부인의 청에 못 이겨 영주는 ‘무리한 조건을 제안하면 관두겠지’라는 속셈으로 고디바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영지의 세금을 낮추겠다고 약속한다. 놀랍게도 그녀는 농민들을 위해 남편의 제안을 실행에 옮긴다. 고디바의 거사가 이뤄지던 날, 농민들은 그녀의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모두 커튼을 내리고 어느 누구도 그녀의 모습을 보지 않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커튼을 살짝 젖히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고디바의 숭고하고도 대담한 시위를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도시의 양복 재단사 톰(Tom)이었다. 이 행위로 인해 톰은 천벌을 받아 눈이 멀게 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관음증을 뜻하는 ‘Peeping Tomism’은 바로 여기서 유래됐다.

신방 엿보기

 우리나라 특유의 혼인 풍속 중 하나로 ‘신방 엿보기’라는 것이 있다.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보내는 신방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친척이나 이웃들이 신방을 엿보는 풍속이다.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재철 교수는 신방 엿보기 풍속이 시작된 연유에 대해서 백정 신랑에 관한 설화를 소개했다 옛날에 백정 신분의 바보 신랑이 있었는데, 신랑 어머니는 그 아들이 걱정돼서 “첫날밤에 신부를 잘 벗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신부의 어머니도 “첫날밤에 신랑이 벗겨도 참아야 한다”고 신부에게 일러두었다. 그러나 신랑은 벗긴다는 것을 신부의 피부를 벗긴다는 의미로 이해했고, 신부는 그것을 참다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일을 방지하려 신방 엿보기 풍속이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 외에도 신방 엿보기 풍속이 생긴 연유에 대해 강 교수는 “옛날에는 조혼(早婚)을 했기 때문에 신랑과 나이차가 큰 신부의 정부(情夫)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 정부가 신방에 몰래 들어와 어린 신랑을 해치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생겼다는 일화가 있다”고 풍속의 유래를 설명했다. 이외에도 ‘호사다마(好事多魔)’. 즉, 좋은 혼인날 악귀가 신방을 침범하여 부부를 해칠 것을 미리 방어하려는 행위였다는 설과 촛불 등으로 인한 화재 예방 차원에서 신방 엿보기가 이뤄졌다는 설 등이 있다.

기게스의 왕위찬탈

 헤르도투스의 『역사』제1권에는 리디아 왕국의 신하였던 기게스가 왕국을 차지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리디아의 칸다울레스 왕은 왕비를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왕은 총애하던 신하 기게스에게 그 사실을 확인시키고 싶어서 몰래 왕비가 옷을 벗는 것을 훔쳐보라 명한다. 기게스는 하는 수 없이 명령을 따랐으나, 왕비는 그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다. 이를 대단히 치욕적으로 생각한 왕비는 왕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기게스를 부른다. 그리고 기게스를 위협해서 왕을 살해하게 했고, 자신이 모시던 왕을 살해한 기게스는 이후 리디아 왕국의 새로운 왕이 됐다. 결국 칸다울레스는 타인에게 자신의 왕비를 몰래 훔쳐보라고 명함으로써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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