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의 중국항일유적 탐방기

들뜬 마음에 밤늦게까지 함께 온 타 대학교 기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새벽 두시가 넘어 잠들었지만, 늦잠 잘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본 것은 창밖으로 보이는 중경 풍경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중경은 안개 때문에 뿌옇기만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 안에서 봤던 안개가 높은 습도를 나타낸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중경의 날씨는 무척이나 습하고 더워 중국의 ‘3대 화로’라 불리며, 여름에는 40°c를 넘을 때도 많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날도 40°c쯤 됐으리라 예상한다.

잠에서 깨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호텔 내부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긴 했지만 하루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는 호텔 식당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힘없이 꺾여버렸다. 최대한 먹을 수 있을만한 음식을 찾고 있는 나의 눈에 쥐가 한 마리 들어온 것이다. 접시 사이를 기어 다니는 쥐를 본 순간, ‘힘든 하루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입맛이 떨어졌다. (앞으로도 음식이야기는 자주 나올 듯하다. 그만큼 중국 탐방에서 음식의 충격은 컸다.)

아침 8시쯤 호텔 밖으로 나왔다. 이제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아래 임정) 연화지 청사’였다. 연화지 청사는 1945년 1월부터 11월 김구 일행이 환국할 때까지 사용된 임정의 네 번째(마지막) 청사였다. 현재 중경시의 시급문물보호단위 65-38호로 제정돼 예상보다 잘 보존돼 있었다. 약 한 시간동안 김구 선생의 집무실과 회의실 등을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은 우리는 다음 탐방지인 임정 오사야항 청사를 향했다.

오사야항 청사는 연화지 청사에서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오사야항 청사는 1940년 9월, 중경으로 옮긴 뒤 임정의 세 번째 청사이며,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하권을 저술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오사야항 청사는 임정 청사라 믿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아니, 훼손 정도가 아니라 기념비만 남아있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현재는 빈민가로 사용되고 있는 듯 했다. 다음으로 찾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옛터 또한 보존이 잘못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식당이 들어서있고 2층에 폐허나 다름없게 남아 있는 흔적을 보면서 ‘이곳이 어떻게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위치해 있었던 곳이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 중경을 찾는 한국 관광객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이 항일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은 얼마나 있을까? 이런 생각이 하다보니, 호텔을 나서던 아침의 설레임이 씁쓸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실, 중국 국민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항일 유적지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연화지 청사와 오사야항 청사, 그리고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옛터를 탐방하고 느낀 것은 임정 청사를 포함한 항일 유적지가 중국인들에게 만큼이나 한국 국민들에게도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중경에서 점심을 먹고(사실, 음식이 어찌나 입맛에 맞지 않던지, 먹은 것 같지도 않다) 곧바로 중경공항으로 이동했다. 어느덧 중경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상해로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낮 5시 쯤, 상해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중경과는 완전 정반대였다. 중경은 마치 시골이나 빈민가를 연상케 한데 비해 상해는 지금의 서울. 아니, 그 이상으로 발전한 곳 같았다. 때문에 나는 상해에 도착해, ‘과거 20~30년 전의 우리나라가 이랬을까?’, ‘지금의 북한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상해 시내로 이동하기위해 자기부상열차를 탔다. 타기 전까지만 해도 ‘KTX와 다를 게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속도를 알리는 전광판의 4백40km라는 숫자를 보고 약간 놀란 것도 사실이다.

이날은 상해에서의 탐방 일정은 없었다. 대신 둘째 저녁은 이번 탐방 중, 거의 유일한 관광 일정이 있었다. 서커스관람을 하고, 유람선을 탔다. 예전에 중국에서도 상해의 서커스가 유명하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어서 기대는 했었지만,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한 서커스를 보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났다. 유람선에서 본 상해의 야경 또한 세계 어느 곳의 야경과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실제로 탐방은 임정 연화지 청사와 오사야항 청사, 그리고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옛터가 전부였지만 중국 내 항일 유적지가 어떤 식으로 보존돼 있을지 짐작케 만든 하루였다. 그 때문에 남은 탐방 일정이 조금은 두렵고 걱정되기도 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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