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우리대학교의 교훈입니다. 진리를 알고 있어야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 누가 제게 교훈을 재해석하라고 한다면 '활발한 소통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답하겠습니다. 이 기획은 '우리대학교 공론장ㅡ공론(公論, public opinion)이 형성될 수있는 사회적생활의 영역ㅡ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소통'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자료사진 컴투게더

   

어디서든지 10분 거리에 1천원을 주고 초고속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우리나라. 기술이 앞섰던만큼 인터넷공론장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클릭하는 순간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의 공론장은 기대 이하라고. 실망스런 오늘(2000년대)의 공론장을 보며 어제(1990년대)의 공론장, 그중에서도 우리대학교 내의 공론장을 돌아봤다.

어제(1990년대): 지난 95년 3월 27일자 1262호 연세춘추를 들춰보자. '우리동네' 알림에 '우리대학교에 재학하는 게이/레즈비언)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대화모임을 만들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아래 삐삐번호로 지체없이 연락주십시오. 곧 여러분의 모임이 마련될 것입니다'란  글이 실려있다.  그 당시 학교가 발칵 뒤집힐만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우리동네에 실린 모임을 시작으로 성적소수자 공동체 '컴투게더'가 만들어졌다. '컴투게더'를 시작으로 몇달 뒤 고려대, 서울대에 '사람과 사람', 'QIS'가 각각 5월, 9월에 뒤따라 생겼을만큼 연세춘추란 공론장에 실린 글은 성적소수자인 대학생에게 해방적인 글이었다. 그 이후로 '컴투게더'는 대자보 등으로 스스로를 알리며 오늘까지 왔다. 아, 자유로운 '11년전'의 우리대학교, 자랑스럽다!

오늘(2000년대):  2002년 4월 3일 정문입구와 백양로 가로수에 붙였던 '컴투게더'  자보와 상징물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두 철거됐다. 심지어 어느 기독교 단체에 소속된 학생은 '많은 사람들이 보면 안될 것 같다'는 이유로 대자보를 뗐고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한다면 컴투게더 회원들의 신분 역시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런 우여곡절 때문인지 '컴투게더'회장은 "가장 먼저 생긴 대학 이반공동체이지만 오히려 성소수자로 활동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고 밝혔다.

어제(1990년대): 대자보가 빽빽히 붙어있는 중도와 학관 앞 자보판. 항상 이곳은 대자보를 읽는 사람으로 바글바글거린다. 아, 사회와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 지성들, 낭만적이다. 하지만 이곳 자보판에도 놀라운 반전이 있었으니 자보판에 깔려있는 '대자보 권력'이다. 유석춘 교수(대자보의 공론장 기능에 대해 "대자보는 보통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 있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라 부지런해야 쓸 수있었고, 때문에 조직화되고 목적이 있는 곳에서 '운동'을 목적으로 많이 썼었다. 이 기능이 인터넷으로 옮겨온 것은 '대자보 권력'이 평준화된 것이라 할 수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낭만적이고 자유로워보이는 어제의 공론장, 자보판에는 누가 대자보를 쓸 수 있는가에 관해 이론과 실제가 몹시 달랐다고 한다. 우리대학교 동문인 미디어평론가 변정수씨는 “대자보판을 관리한 당시 총학이 검열을 하거나 통제를 한 건 아니지만 실제로 ‘일반 학생’들이 아무나 대자보를 쓸 수 있다고는 적어도 ‘일반’ 학생들은 믿지 않았다”며 당시의 대자보 권력이 분명히 존재했다고 말했다. 반박자보가 처음 붙었던 자보 옆에 붙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 역시 ‘아무나’ 쓸 수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2000년대): 어제의 공론장에 ‘대자보권력’이 있다면 오늘의 공론장엔 이른바 ‘주류들의 권력’이 있다. ‘연세대정보공유’에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는 여학생을 상상할 수있는지? ‘나는 원주캠 학생이 아니지만…’이란 전제를 붙이지 않고 원주캠에 대한 인신공격을 비판할 수 있는 신촌캠 학생이 있는지? 꼭 사회적으로 주류가 아니더라도 특정 공론장을 미리 선점한 사람들이 ‘주류’가 돼 ‘비주류’를 공격한다. 

어제(1990년대): 자보판에서 인터넷게시판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존재했던 PC통신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모인 동호회도 있었고 지금의 인터넷 공간과는 달리 그런대로 ‘자정기능’을 발휘하는 ‘공론장’ 기능을 했다고 한다. 미디어평론가 변정수씨는 PC통신 동호회가 말 그대로 '친목 동호회' 수준이었고, 오프라인에서 '동호회 행사'를 통해 얼굴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므로 함부로 굴 수 없었으며 당시 공론장을 주도적으로 꾸려갔던 이용자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현재와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고 한다. 하지만 천리안의 연세대 동호회는 1천여명의 회원수만 확보한 채 버려져있다. 이곳에 있었던 많은 자료들은 어디로 갔을까? 연세대의 역사가 될 수있는 소중한 기록들이 공론장이 쇠퇴함으로써 사장됐다.
 
오늘(2000년대): 학내 공론장은 뿔뿔이 흩어져있다. 학교 자유게시판과 연정공, 총학 타운홈피가 기능을 명확하게 구분짓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고 싸이월드, 다음 등의 포털사이트엔 버려진 한학기용 조모임 커뮤니티, 해마다 새로 생겼다가 방치되는 과?반 커뮤니티가 2천7백여개 이상이다. 총학생회 홈페이지가 제대로 이월이 안돼 난항을 겪고 있는 것처럼 연정공도, 총학 타운홈피도, 학교 자유게시판도 먼훗날 후배들에게 이월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건 아닌지.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어제의 공론장을 떠올리라면 독수리다방이나 오늘의 책에 있었다고 하는 메모판의 낭만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문제는 어제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없는 법이다. 오늘의 공론장이 지닌 문제가 어제에도 존재했다면 내일의 공론장이 지닐 문제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공론장을 떠올리면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 내일의 공론장, 가치있는 상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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