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내가 당신에게서 오직 당신만을 원했다는 것을, 당신의 재물이나 그 어떤 재산도 아닌 오직 당신만을 원했다는 것을 하느님은 아실 겁니다’

중세의 연인 중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처럼 세간의 관심을 끌고, 후대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연인이 있었을까? 이 둘의 사랑은 철저한 금욕과 순결로 무장해야 했던 신학자와 수녀라는 제약을 뛰어넘어 더욱 은밀하고 격정적으로 이뤄졌다.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후세 사람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해, 시나 소설, 영화 등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했다.

▲ 중세최대의 연애사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피에르 아벨라르(Petrus Abaelardus, 1079~1042)는 중세 철학을 지배한 보편논쟁에서 개념론을 제시한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였고, 엘로이즈(Heloise, 1101~1164)는 노트르담 성당의 참사회원인 퓔베르의 조카로,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학식이 뛰어나 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선생과 제자로 처음 만난다. 불과 서른일곱의 나이에 파리 대성당학교 교장으로 명성을 떨치던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소문을 듣고,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 아벨라르는 그녀의 숙부인 퓔베르에게 엘로이즈를 가르치고 싶다고 전한다.

 ‘사랑은 두 사람의 눈을 교과서의 문자 위를 더듬게 하지 않고 서로의 눈망울 속에 머물게 했네’라는 아벨라르의 고백처럼 둘은 사랑으로 불타오른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곧 퓔베르에게 알려지고, 그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아벨라르는 퓔베르에게 엘로이즈와 자신의 결혼을 제의한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청혼을 거절한다. 이에 대해 계명대학교 철학과 유원기 교수는 “아벨라르는 결혼을 하면 자신의 학문을 펼치지 못한 채, 학계를 떠나야했던 상황”이라며, “그래서 엘로이즈는 아벨라르를 위해 청혼을 거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벨라르는 결국 엘로이즈를 설득해 비밀리에 결혼을 하지만, 그녀는 곧 결혼한 사실을 부인한다. 이 일로 퓔베르와 엘로이즈는 큰 다툼을 벌이고, 아벨라르는 퓔베르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위해 엘로이즈를 수녀원으로 피신시킨다. 그러나 퓔베르는 아벨라르가 엘로이즈와의 관계를 끊고 자신들을 기만하려 그녀를 수녀원으로 ‘쫒아냈다’고 오해해 밤중에 아벨라르를 기습해 ‘거세’를 해버린다.

이 때, 아벨라르는 ‘나는 누구에게나 엄청난 구경거리였다네’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엄청난 수모와 치욕을 겪었다. 그리하여 아벨라르는 수도원의 담장 속으로 ‘도망치듯’ 들어가고, 엘로이즈와의 관계를 단절해버린다. 엘로이즈 역시 정식으로 수녀원에 입회한다.

이후 15년이 지나 다시 엘로이즈와 서신을 교환하기까지, 아벨라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린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엘로이즈가 보낸 서신을 보면 그녀의 사랑은 변치 않은 것 같지만, 아벨라르는 단지 옛 연인이 잘 되기를 바라는 정도의 마음뿐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왜 아벨라르는 그녀의 사랑을 거부했을까? 유 교수는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을 권면하는 반면에 엘로이즈는 종교적 사랑과 함께 육체적인 사랑도 원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그녀의 요구가 사랑 때문에 거세를 당해야 했던 아픔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라르는 강연을 통해 수녀회의 후원금을 마련하는 등 엘로이즈를 여러 차원에서 돌보고 배려한다. 이런 아벨라르의 행동은 그녀에 대한 채무 의식보다는 자신의 비극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면서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도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그 성숙한 면모가 드러난다. 이후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에게 ‘자신이 죽으면 엘로이즈의 수녀원 묘지에 묻어달라’고 부탁했고, 후에 그녀는 그 부탁을 그대로 실행한다. 그리고 20여년 후, 엘로이즈도 그의 곁에서 잠든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사랑 때문에 평생 비극을 짊어지고 살아가지만, 자신들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며 견뎌냈다. 비록 시대가 그들을 가로막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런 그들의 사랑이기에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김정하 기자 boychunh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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