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공연은 특정한 시설이 갖춰진 장소에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돼 왔다. 무대와 객석은 공연을 위한 충분조건으로, 예매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여기 마이크만 잡고 있어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흩어지는 자유분방한 공연이 있다. 이제 거리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탈적인 공연에 잠시 빠져보자.

▲ 셋! 하면 다같이 힙! 합! -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힙합팀과 관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공연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insomniaboy@yonsei.ac.kr 스치듯 만나는 거리공연 가로등에 걸린 현수막과 그 아래 스피커 네 개로 완성된 조촐한 무대. 아직은 공연시작 전이지만 벌써부터 행인들은 반원을 그리며 멈춰 서있다. 스피커 고장으로 시간이 많이 지체돼도 이들은 자리에서 떠날 생각을 않는다. 간혹 공연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의자 위로 올라간 사람도 보인다. 이윽고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첫번째 팀인 ‘더 실버라이닝’의 공연이 시작된다. 비폭력을 주제로 한 가사를 어려워할까 관객들에게 미리 던지는 한마디. “처음엔 원래 재미있는 곡이 안 나와요. 지금 참으셔야 하는 시간이에요.” 지난 9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랩판’은 그렇게 벌어졌다. 이번 공연에는 다섯의 힙합팀이 나왔다. 이 중에서 두 팀은 거리공연 활성화를 위해 참여한 특별 게스트 형태였다. 즉흥적인 거리공연을 보기 위해 행인들은 점차 모여들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열기는 더해갔다. 어떤 랩퍼는 ‘울산광역시 랩대표’라고 프린팅된 옷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며 자신의 앨범을 나눠주기도 했다. 특별 게스트 ‘New Dynasty’의 서성조씨는 “클럽에서 부르는 노래와는 달리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며 첫 대학로 거리공연의 소감을 밝혔다. 자발적인 공연인에서 우발적인 관객에 이르기까지 공연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색다른 거리공연을 만나보자.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대학로 거리공연인 연합

“몇 회째 공연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각 팀별로 참여시기가 달라 수 백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로 거리공연인 연합(아래 대공련, http://www.streetplay.org)이 생긴 후부터는 77회 공연이다.” 대공련 의장 이대희씨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대학교의 이전과 함께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되고, 젊은이들의 문화적 발산욕구가 대학로에서 이뤄지면서 시작된 거리공연. 지난 2004년에는 ‘대공련’이 결성되기까지 이르렀다. 이씨는 “공연인들이 보다 활발하고 안정적인 거리공연을 진행하고, 거리공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단체”라고 존립목적을 설명한다. 대공련은 ‘거리’라는 열린공간을 하나의 문화 발생지로 만들기 위해 비상업성, 창조성, 일상성의 세가지 원칙을 지키며 매주 새로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의 수익을 전제로 하는 ‘기획공연’은 작품 선정과 공연인 모집 등에 필요한 자금을 관객에게서 제공받는다. 관객과 소통의 측면에서 공연인들 스스로가 관객을 찾아나서는 방식인 것이다. 이와 달리 ‘거리공연’은 거리 위의 모든 행인이 관객이며 스스로의 의지로 공연을 관람한다. 보기 싫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도 그만이다. 바로 공연의 질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 중요한 요소임을 의미한다. 대공련 힙합팀 ‘더 실버라이닝’의 박하재홍씨는 “매주 공연이 이뤄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신곡을 내지만 호응이 좋지 않으면 바로 내린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거리공연은 공연인에게 있어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장이 된다.

거리공연의 명암

누구나 부담없이 관람할 수 있기에 거리공연은 다양한 연령층을 불러 세우기도 한다. 한 공연에서 관객들은 지속적으로 드나들며 바뀌기 때문에 회전율도 굉장히 빠르다. “사운드에 이끌려 한번 즐겨보자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김한빈씨, 고려대 법학·03), “직접 공연장에 찾아가는 번거로움 없이 일상에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노경미씨, 30). 이것이 관객들이 느끼는 대학로 거리공연의 모습이다. 이처럼 군더더기 없는 만남은 공연인과의 직접적인 문화소통을 가능케 하고, 자연스런 광경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하지만 거리가 열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에 있어서는 많은 제약을 받는다. 대공련 의장 이씨는 “마로니에 공원 내 집회나 기업행사가 있으면 쫓겨나기 일쑤”라며 “순수 거리공연은 사라지고 기업홍보공연 등으로 대학로가 얼룩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재정적인 부분도 공연인들 호주머니에서 해결해야하므로 열악한 장비는 일차적으로 공연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된다. 서울시 홈페이지는 대학로의 명물로 거리공연을 홍보하고 있지만 “당장 전기를 얻어 쓸 곳도 없다”며 가로등 하나에 의존하는 공연에는 어떠한 지원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거리공연들을 지원하고 공연의 순수성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

선선한 토요일 저녁, 대학로에 들를 일이 있다면 마로니에 공원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조용했던 거리가 에너지 넘치는 무대로, 멋쩍어하던 행인들이 어느새 동화돼 관객으로 변하는 문화소통의 공간. 변화무쌍한 거리 위에서 대공련은 비주류 거리공연예술가의 창구적인 역할을 꿈꾸며 오늘도 일상의 축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소통의 벽을 넘어 거리공연이 우리 공연 문화에 있어서 하나의 르네상스 운동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정석호 기자 choco021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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