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실학에 주목하기 시작했을까.

경기도는 이번 달 말부터 오는 10월 3일까지 실학을 주제로 ‘실학축전 2006’을 개최할 예정이다. 실학학교, 시서화탁묵, 실학체험 등 다양한 테마로 남양주 다산 유적지 일대에서 열리는 ‘실학축전 2006’은 최근 높아지고 있는 실학에 대한 관심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행사다. 실제로 현재 실학을 주제로 삼고 연구하거나 선양하는 기관과 단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실학박물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몇몇 학자들은 ‘실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용어사용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왜 이런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이는 실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실학의 개념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실학과 주자학의 상호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즉, 실학과 주자학을 질적으로 다른 학문·사상 체계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실학을 주자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것인가 하는 이견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실학에 대한 이러한 논쟁은 오늘날 조선 후기 사상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논란의 핵으로 등장하고 있다.

▲ 오늘날 근대 지향의 실학 개념에 관한 대안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실학연구의 어제와 오늘 

실학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근대화를 갈구하던 일제시대 국학자들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해방 후에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왔다. 근대화에 실패한 조선 후기를 어둡고 낙후된 시대로 인식했던 민족주의 계열 학자들은 조선시대의 핵심 사상이었던 주자학 혹은 성리학을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봤다. 대신 그들은 주자학과 대비되는 것으로 ‘실학’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실학에 주목하게 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나라를 뺏긴 채 일제의 지배를 받던 암울한 시기에 민족주의 학자들이 조선의 역사 속에서 망국의 원인을 찾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의 사례에서 일말의 희망을 찾으며 ‘민족적 자부심’을 잃지 않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민족주의 학자들은 조선 후기 정약용이 북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화성 신도시 건설의 계획안을 제출한 것이나 『경세유표(經世遺表)』와 같은 저술을 남긴 것 등에 주목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로 조선 후기 사회와 사상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이뤄지면서 주자학이나 성리학자들 중에도 소위 실학자 못지 않은 진보적 사상가들이 많으며, 실학자로 알려진 학자들도 주자학이나 성리학을 전적으로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실학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실학의 개념을 보다 더 명확하고 정확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실학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며, 만약 실학이란 용어가 조선후기의 새로운 사상 경향을 정확하게 서술할 수 없다면 실학의 존재는 폐기되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실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

하지만 최근 학계의 움직임은 초기 극단적인 비판가들처럼 ‘실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즉, 실학이라는 용어는 실제로 조선 후기 학자들 자신들이 널리 써온 말이며, 오늘의 시점에서 보더라도 계승할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한림대 사학과 한영우 특임교수는 “실학이 있다 혹은 없다는 이분법적인 접근은 학문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주자학(혹은 성리학)과 실학을 대칭적으로 보거나, 전자를 중세적 사상, 후자를 근대적 사상으로 양립시키는 고전적인 접근은 이제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단국대 사학과 김문식 교수 역시 “조선 후기 실학의 특징을 주자학과 무관한 것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중요한 것은 주자학을 했기 때문에 실학이 아닌 것이 아니라, 주자학을 어떤 방식으로 연구했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는 전반적으로 주자학 연구가 발달했는데, 이러한 특징은 서적의 보급 상황이나 동시기 중국의 고증학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에 반해, 경희대 사학과 구만옥 강사는 “자연법칙인 물리(物理)와 도덕 규범인 도리(道理)를 통일적으로 이해한 주자학과 달리 홍대용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이를 구별했다는 점에서 사상적 차이를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 강사는 “실학이 추구한 새로운 세계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실학에 대한 이러한 기존의 이해체계가 기존의 통설적 실학론을 대치하기 위해서는 장차 여러 방면에서의 심층적 연구가 보완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하기도 했다.

신(新) 실학을 위하여

최근 학계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실학’의 학문적 특징을 살펴보면 그 논쟁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아직까지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은 듯 하다.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히 조선후기 사회·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연관지어 새로운 학풍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실학’이 조선 후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핵심적 개념인 만큼, 그 올바른 정립은 조선 후기의 역사상을 새롭게 구성해 내는 선결적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우리가 오늘날 실학에 관심을 갖고, 또 실학이라는 말을 붙여 조선 후기 사상사를 이해해야 한다면, 그것은 오늘에도 호소력이 있고, 계승할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산업화와 근대화를 넘어선 21세기에 찾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실학을 바라봐야 하겠다. 즉, 그동안 지나치게 근대주의를 바탕으로 실학을 바라본 눈을 돌려 이제는 탈근대의 문제의식도 접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모색하는 현대 사회의 ‘신(新)실학’의 모습이 아닐까. 

                      /김은지 기자 eunji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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