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때 처음으로 연극 작품을 보면서 나는 무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했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공연 중인 극단 ‘모시는 사람들’ 대표 김정숙 씨는 연극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도 이런 연극에의 몰입을 경험해 본적이 있는가. 영화처럼 화려한 볼거리는 아니지만 내면의 울림을 더 크게 들을 수 있는 소극장. 당신만의 오아시스는 어디인가.

사실 현재 연극계는 큰 위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초대형 뮤지컬의 등장과 소극장 연극에 대한 무관심, 경제적 문제 등 그들 앞에 놓인 위기의 산은 너무나 높아 보인다.

세종문화회관의 『미스 사이공』좌석은 빈틈없이 빼곡히 차는 반면, 같은 시간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는 몇 안되는 좌석도 빈 곳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양극화가 가장 큰 문제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문제도 원인의 하나가 돼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의 배우 중 가장 연봉이 큰 사람도 겨우 1천 5백만원을 받는 만큼 소규모 연극시장은 영세하다. 반면 소극장 한달 대관료는 1천 5백만~2천만원으로 티켓 값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시점에서 지원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그나마 대기업들의 후원은 유명한 초대형 작품에만 몰려 둘 사이의 차이는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 연극인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아직 보이지 않고 초대권의 남용 역시 판매되는 표의 비중을 감소시킨다.

그리고 이렇다 할 스타가 부족한 것도 아쉬운 문제. 소위 좀 ‘떴다’ 싶으면 영화나 TV로 옮겨가는 현실은 이를 심화시킨다. 또한 『지하철 1호선』의 조연출 이황의 씨는 “사회언론이 문화에 관심이 없는 것도 큰 문제”라며 언론에서 유행만 따라가는 관행을 꼬집었다. 이런 것들의 결과로 연극은 점점 무게가 없어지고 관객의 기호에만 쫓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소위 ‘잘 나가는 연극’들이 있다. 그 중 몇몇 작품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 장기공연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공연의 70%는 배우 지난 1994년 초연된 뒤 13년째 계속되고 있는 『지하철 1호선』. OST까지 발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끄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에 대해 조연출 이씨는 “작품, 배우, 연출의 삼박자가 잘 맞은 것 같다”며 특히 배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도 많고 전하는 메시지가 많은데 그것을 배우들이 ‘치열하게’ 잘 보여준다. 일단 무대에 오르면 연출가도 없고 배우가 왕이다. 풍부한 내용을 관객이 놓치고 가지 않게 하기위해 그들은 노력 중이다. 색다름은 나의 것, 실험연극 극단 ‘76단’의 대표작인 『관객모독』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지난 1978년 초연 이후 계속 화제를 불러 모아 온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욕설을 내뱉고 물까지 뿌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욕설을 퍼붓는 것이 오히려 관객의 관심을 유도하고 자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젠 물뿌려도 관객들이 놀라지 않아 걱정이라는 76단 기획실장 허성수 씨의 말은 다른 방법으로의 각색을 은근히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초연 당시부터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해방감을 준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말처럼 『관객모독』은 현재까지도 대학로의 연극 중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다. 가격혁명, 1만원 작품 전용극장을 세우고 최근 두달째 매진 행렬을 달리고 있는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최근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표값을 1만원으로 고정해 관객에게 문턱을 낮췄다. 그러나 결코 작품을 싸게 팔아버리는 박리다매가 아니라 오히려 관객의 폭을 확대시킨 것은 신선한 시도였다. 김 대표는 “가격을 높게 책정해 놓고 할인해주는 것은 관객의 신뢰를 깎는 일”이라고 말했다. 애초 낮은 가격에 감동과 재미를 풍성하게 즐기고 동시에 보는 사람에게 삶의 위로를 해주는 힘이 이 작품에는 있다. 결국 관객들에게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인식시킬 수 있었다. 『관객모독』은 곧 관객만족! '극단 76단'의 허성수 기획실장 /유재동 기자 woodvil@yonsei.ac.kr
그렇다면 또 다른 해답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무엇보다 위와 같은 좋은 원작이 나와야 한다. 허 기획실장은 “세계 4대 뮤지컬도 결국 작품 자체가 좋기 때문에 선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한 스타 몇몇만 취재하려 하는 기자와 홍보효과가 큰 대형 작품에만 지원하는 기업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문화는 없고 패션만 있는’ 곳에는 질적인 발전이 존재하기 어렵다. 한편 연세극예술연구회의 배재휘씨(주거환경01)는 “홍보기획도 잘 돼야 한다”고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거물급 작품의 홍보 효과에 쫓아올 수가 없다는 것. 이에 한 방법으로 연극이 극장에만 갇혀있지 말고 밖으로 나올 것을 제안하는 배씨. “꼭 훌륭한 조명, 무대가 있어야만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다.

왜 연극인가

그래도 연극은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관객과 배우의 무언의 교감은 카타르시스라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크게 느끼게 하는 소통의 발로다. 허 기획실장은 “시나브로 성장해 가는 인간에게 예술은 단백질이나 비타민과 같은 필수요소”라며 “나무가 없이 콘크리트만 있는 길거리를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연극 극장을 ‘가장 협소하지만 가장 부유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연극은 나를 확인시키는 기능이 있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 속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한 인간의 노력이 엿보인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자신과 대면한 유치환 시인처럼 우리도 좁지만 풍성한 공간에서, 그것도 2시간 안에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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