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역대 흥행 순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상위 10위 중 5편의 영화(『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웰컴 투 동막골』,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가 남북 분단과 직·간접적으로 연관 있는 소재이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국 영화에 있어서 남북 분단이라는 소재는 매력적인 흥행카드로 작용하고 있다. 왜 영화와 남북분단이라는 소재가 만나게 되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우리대학교에서 열렸던 ‘8·15 통일 축전’에서 보여 지듯, 아직도 우리사회는 ‘보수’와 ‘진보’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북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는 이러한 갈등의 핵심적 문제다. 각자가 바라보는 시각을 다른 이에게 소개하고 설득하는데 있어서, 영화는 매력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다. 최근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의 제작에 나서겠다고 밝힌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딱딱한 책을 통해서 북한에 대해 얘기해봐야 지금 젊은 세대의 문화 감각을 고려할 때는 한계가 있다. 영화를 통해 북한의 모습을 그려내고 이를 젊은이들이 받아들여 북한을 제대로 알고,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며 이번 기획의 취지를 밝혔다. 이렇듯 남북문제에 대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데에 영화가 사용되기도 한다.


남북분단의 소재가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인간의 근원적 슬픔과 사랑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1998년에 개봉됐던 『쉬리』 이후, 남북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진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초기의 영화들은 남북한의 대치 상태에서 그려지는 첩보나 전쟁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이후의 영화들은 남북분단에서 나타나는 비극적 상황을 소개해서 관객들에게 호소하거나, 화해의 메시지를 무겁지 않은 이야기에 담아서 관객들이 부담 없이수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고 있다. 최근의 『송환』이나 『웰컴 투 동막골』, 『국경의 남쪽』등이  좋은 예다.


우리대학교 이상길 교수(영상대학원·문화와 커뮤니케이션)는 “영화 소재로서의 분단 문제는 사회성과 감독의 주제의식을 잘 구현할 수 있으면서도 강한 내러티브의 힘을 갖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본다”면서 “『공동경비구역 JSA』이후 한국 대중영화에서의 분단문제 다루기가 탈냉전의 경향을 나타내는 것은 긍정적인 조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는 식의 규범적 처방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칫 창작자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부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냉전의식을 조장하는 설정의 영화들이 앞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기에 영화계에서 시대착오적인 영화들이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전망해본다.


이제 남북문제는 영화를 통해 현실보다 더 나아가 용서와 화해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분단의 현실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영화가 상영되는 단 두 시간만이라도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공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닐까.

   
▲ 남북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들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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