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      
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시옵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무거워져가는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흩날리는 날에는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굵은 땀방울이 빛나 보였던 여름을 뒤로한 채 이제 우리는 가을과 함께 부쩍 자란 몸과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반갑다. 참 반갑다. 이제 다시 새로운 출항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점검할 것이 있다. 어디로 가고자 다시 출항하는가? 다소 바보스런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잠깐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정말 지금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자 하는가?
삶의 항로, 지도 위에 그려진 그 가상의 선을 따라 운항하며, 단 한치의 오차도 없기를 감히 원하는 것은 아니다. 파도가 꿈틀대는 삶살이의 바다 위를 사실 그렇게 제 맘대로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원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목적지를 잊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그런데 내가 참으로 원하는 목적지가 있는가?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있다는 것이다. 일렁이는 파도에 때로는 항로를 이탈했다면 그거야 바로바로 보정하면 된다. 그뿐이다. 눈앞의 바다가 망망하다고 압도될 필요도 없고, 파도가 거세다며 좌절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내가 의식해야할 것은 목적지를 알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한다는 점일 뿐이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한다. 열심이 없는 꿈이 몽상인 것과 똑같이,  꿈이 없는 열심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을은 커다란 축복이다. 가을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새로운 성찰을 제공해준다.  가을이면 즐겨읽던 시집을 나도 들추어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가을이 선사하는 축복에 싸여 나 또한 나직이 되뇌어 본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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