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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학생운동을 아는가?
  • 이지은 기자
  • 승인 2006.09.01 00: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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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96연대항쟁, 혹은 96연대사태가 일어난지 10년이 되는 해다. 이 사건은 한총련 행사인 8·15 대축전을 둘러싸고 정부와 학생이 대치했던 사건이다. 이 일은 단순히 연세대의 한 건물이 무너졌다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사실상 그 후 학생운동 전반이 쇠락했으며, 사회적인 호응도 얻지 못하게 됐다.

▲ 과거 우리나라 사회발전에서 강력한 추동력을 담당했던 학생운동의 빛이 점점 바래고 있다. 학생운동은 하루빨리 그 나아갈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한국 민주주의의 아픔과 함께한 학생운동

우리나라의 학생운동은 민주주의 정착 과정에서 근·현대사의 질곡과 궤를 같이 한다. 근·현대사만 봤을 때, 학생운동의 시초는 1960년의 이승만 정권에 저항한 4·19 혁명을 들 수 있다.“4·19 혁명 이후로 학생운동은 민주주의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을 했고,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기점으로 새 사회 형성과 제도적 밑받침 마련에 큰 역할을 했다”는 이신행 교수(사회대·정치이론 및 사상)의 말처럼, 독재정권에 반하는 학생운동은 민주주의가 최대 과제였던 시대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학생운동은 1970년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을 계기로 노동운동과 연대하기도 했다. 이 시기 학생들은 민중의 구체적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현장준비론 아래 위장 취업의 형식으로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1980년도의 광주민주화항쟁은 반미의식에 영향을 줘 1985년 미국문화원사건을 촉발했다. 당시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에 재학중인 학생 73명이 광주사태를 묵인한 미국에 책임을 묻고 한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요구하며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던 것이다. 1987년에는 전두환 정권 당시 6월 항쟁의 발단이 된 서울대 박종철씨의 고문치사사건에 이어 4·13 호헌조치로 말미암아 사회 각계각층에서 성명을 발표한다. 학생들 역시 이에 동참해 시위를 하던 중 우리대학교 이한열씨가 최루탄에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항쟁은 마침내 직선제를 포함한 6·29선언을 이끌어낸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은 학생운동사의 주요 분기점 중 하나다. 특히 이후에는 좌파적 이론이 보다 정교해지면서 학생운동의 노선은 확연한 계열을 갖는다.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삼는 NL(National Liberty)은 사회의 주요모순을 민족모순으로 보고 민족해방을 주장하며, 분단국가라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반미·자주 통일을 지지한다. 반면 맑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삼는 PD(People Democracy)는 민중모순을 주요모순으로 여겨 계급 해방을 외친다. 그래서 노동자와 여성 등 약자의 편에서 운동을 전개한다.

산 넘어 산, 학생운동

이토록 근현대사 속에서 숨가쁘게 달려온 학생운동은 분명 사회를 바꾸는 하나의 단초로 강력한 원동력이 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있다. “우리끼리는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단 말도 해요”(윤태영, 경영·02), “전반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 같다”(상은, 사학·03). 이것이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보는 현재의 학생운동의 모습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교수는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해 학생운동가들이 주요 시기마다 새로운 논리와 철학을 창출해내지 못했음을 주원인으로 든다. 그는 “학생들이 선민의식에 싸여 좌파적인 경직성에 이데올로기 경직성이 더해져 각 계열 간에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시대 흐름에 맞는 의제를 만들지 못했다”며 비판한다. 또한 윤씨는 “대다수의 학생이 고민하는 것을 같이 고민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라며 그간의 학생운동에 대해 분석한다.

이렇듯 당면한 해결 과제들과 더불어 학생운동은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한다. 바로 무관심이다. 특히 운동권이라는 용어는 학생들이 학생운동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학년 때 같이 집회를 갔던 동기들이 운동권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이 싫다며 다음부터 집회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상은씨의 말처럼, 운동권이란 단어에 내재된 짙은 이데올로기성은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먼 요즘의 학생들에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일 뿐이다. “친구들은 다 영어·고시공부를 하는데 나 혼자 그런 일을 하면 뒤처지는 것 같다”는 이아무개씨(경영계열·06)의 말은 요즘 대학생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생 운동가들이 학생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은씨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급진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전체 민중의 유일한 운동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1학년 때 반전 집회에서 ‘우리의 말은 무기다’라는 구호를 들었다는 상은씨. “당시 우리의 침묵을 부시가 이라크전에 찬성하는 것으로 이용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며 자신이 학생운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윤씨는 “양심에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사회 구조를 바꾸는데 동참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어 윤씨는 자신의 삶의 일부로서, 관심분야에 대한 취미로서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원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다시 한 번 날개를

학생운동은 여전히 필요하다. 입시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가기 전의 예비 사회인들인 대학생들은 이 시기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현장에 대한 생체적인 이해가 없으면 세계화시대 심부름꾼만 될 뿐”이라며 “현장운동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학생운동”이라는 이 교수의 말은 학생운동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순응적 자세로 대학생활을 보내고 사회에 나가면 말 그대로 하나의 부속품이 될 뿐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구상을 안고 사회로 나가 독창적인 삶과 사회를 꾸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때, 학생운동은 그 생명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학생만큼 양심적인 세력은 없었다”는 이교수의 말을 되새겨볼 만하다.

이지은 기자  superjlee2005@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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