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집짓기 운동 단체인 해비타트(Habitat)를 아는가?  해비타트는 1976년 미국의 변호사 밀러드 부부가 무주택 서민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설했다. 민간 기독교 단체지만 활동은 초교파적이다. 한국에서는 2001년 ‘지미카터 특별건축사업’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현재 전국에 13개 지회가 있다. 건축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이뤄지며 참여기간은 1일부터 5박6일까지 참가자가 선택할 수 있다. 건축공정의 주요 작업을 하는 기간 동안에는 ‘한국번개건축’이라는 일주일간의 합숙이 이뤄지게 된다. 집이 완공된 후 입주가정은 매달 건축원가를 납부하는데, 완납 후엔 매매·전세가 가능하다. 이 상환금은 다른 건축 사업에 재사용돼 일명 ‘회전기금’이라고 한다.

▲ 조심! 또 조심! 완성된 지붕구조물을 협력해서 옮기는 자원봉사자들. 그들이 만든 지붕구조물은 모두 10여개다.

기자가 19일 찾아간 곳은 전국 13개 지회 중 강원도 춘천 지회였다. 강원도에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가 많아 자원 봉사를 못하게 될까봐 염려했지만, 다행히도 19일 수요일의 날씨는 하루종일 ‘맑음’이었다.
 

아침 9시쯤 도착한 현장에는 그날 모인 자원봉사자들로 북적거렸다. 처음 온 참가자들을 위해 사무국장의 오리엔테이션으로 봉사 일정은 시작됐다. “해비타트 건축물은 2005년에 20만 채가 지어졌는데, 이는 24분에 1채씩 지어진 셈입니다.” 해비타트에 관한 김승구 사무국장의 짤막한 설명이 이어진 후 성석중 건축팀장이 현장안전에 관한 사안들을 이야기했다. 그날은 특히 고등학교 2곳에서 봉사활동을 온 터라 더욱 안전에 주의가 필요한 날이었다. 모든 설명이 끝난 후, 봉사자들은 안전모와 목장갑을 하나씩 받아서 현장의 일을 시작했다. 난생 처음으로 쓰는 안전모가 기자에게는 어색하기만 했다. 그 날의 작업은 주로 목재작업이었다. 이미 춘천 지회의 해비타트 현장에는 총 4동이 완공되어 16세대가 입주해 있었으며, 현재 짓고 있는 건물도 35%가 진행 중이었다.

해비타트, 봉사다운 봉사를 할 수 있는 곳

 기다란 목재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가자, 목재의 끝을 다듬는 작업을 위해  팀장이 전기톱을 가져온다. “톱니바퀴에 손가락을 다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목장갑 안의 손가락들이 순간 긴장하지만, 다행히 기자는 옆에서 목재가 밀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일을 했다. 다른 봉사자들은 둘씩 짝을 지어 목재를 나른다. 성 팀장은 아쉽게도 장마로 인해 그동안 작업을 거의 못해서 해비타트를 위한 준비 작업이 미흡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오전 시간에는 봉사자들이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 “어떤 때는 1백명이 와도 모두가 일에 다 참여했는데 오늘은 준비 작업이 덜 돼서......”라며 성 팀장은 아쉬워했다. 그렇게 오전의 작업이 끝이 나자 전체 봉사자들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시원한 미역국. 기자는 이날 개인 참가 자격으로 보호자인 어머니와 함께 봉사활동을 온 숙명여고 이희재양(18)과 친구인 중대부고 이지석군(18)과 함께 밥을 먹었다. 이들은 “전에 했던 봉사활동은 단순히 시간만 채운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어른과 아이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봉사다운 봉사는 이곳이 처음”이라며 해비타트 운동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특히 이번이 두 번째 참가라는 이군은 “맨 처음 왔을 땐 현장이 지저분했는데, 오늘 다시 와보니 건물도 완성돼있고 주변정리도 깨끗하게 돼있어서 내가 뭔가 해낸 것 같아 뿌듯하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후에는 오전에 팀장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준비한 덕분에 봉사자들 전원이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었다. 팀장과 일을 도와주는 간사가 오전에 준비한 합판과 구도를 밑에 깔고 지붕 뼈대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트러스 작업이라고 한다고 했다. 삼각형 모양으로 구조를 만드는 이 작업은, 단순하게 삼각형이라고 그냥 삼각형 형태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긴 목재를 받치는 작은 목재도 넣어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봉사자들은 여기서 그 구조들을 엮는 일을 담당했는데, 합판을 목재 위에 얹어 구조물에 못을 박는 일을 했다. “자, 창고에서 망치 가져오세요!” 간사가 고등학생들에게 말하자 학생들이 창고로 우르르 달려간다. 기자 역시 망치를 하나 들고 와서 망치질을 시작했다. 봉사자들은 못이 한가득 쌓여 있는 들통에서 한 움큼 못을 들고 와 합판에 못을 박았다. 팀장이 망치질을 한 번 하면 쑥쑥 들어가던데, 기자가 직접 망치질하는 못은 왜 수십 번을 쳐도 안 들어가던지... 망치질 하나도 그리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다행히 시간이 좀 흐른 후에는 요령이 생겨서 기자도 열 번 안팎이면 못 하나를 다 박을 수 있었다. 못을 박으면서 오리엔테이션 때 팀장이 했던 설명이 생각났다. “오늘 못을 5개만 박고 가도 좋습니다만 대신 정확히, 꼼꼼히 박아주세요. 오늘 여러분이 만든 집에서 사람들이 살게 되니까요.”

진정한 노동의 의미를 깨달았던 하루

 시간은 어느덧 5시를 향해 가고, 이 날의 봉사활동은 끝이 났다. 이제야 뭔가 일을 찾아 하나 싶었는데 끝나다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기사 마감만 아니라면 하루 더 묵어서 마무리 되는걸 보고 가고 싶은데 말이다. 돌아오는 길은 한 시간 남짓한 망치질로 어깨가 쑤시고 무거운 목재를 나른 덕에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온 힘을 쓰면서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노동다운 노동’을 해봤다는 생각에 기자는 마냥 뿌듯하기만 했다. 아마도 해비타트라는 봉사활동이 사람들을 끄는 이유는, 비록 힘든 일일지라도 이것이 쌓이고 쌓여 사랑의 집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 가면, 꼭 친구들에게 추천해서 다음에도 이곳으로 또 오자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기자의 머릿속을 스쳐간다.
 

문득 봉사자들이 해산하면서 고등학생의 학부모님이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아유, 일을 더 했어야 하는데... 저 지붕 오늘 20개는 했어야 하는데 아쉽네...”

/글 이지은 기자 superjlee2005@yonsei.ac.kr
/사진 유재동 기자 woodvi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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