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한나(국문·03)
 거의 모든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압축 프로그램 아이콘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압축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수백 개의 사진 파일이나 음악파일의 용량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편리하게 전송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압축 프로그램의 기본 원리는 분해와 논리적 재배열이다. ‘aabcba’와 같은 문자열을 ‘a 세 개, b 두 개, c 한 개’의 방식으로 인식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사진에서 하늘은 같은 파란색 점의 집합으로 저장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차이는 무시되기도 한다. mp3 파일로 음악을 저장할 때에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영역의 소리를 제거하여 용량을 줄인다.
 
 문자 메시지를 전송하고 수신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는 것 같다. (휴대전화 기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40자 내외로 제한된 길이에 전달하려는 내용을 모두 집어넣다 보니, 압축은 빈번히 일어난다. 핵심적인 단어를 적는 대신, 딱히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조사나 어미는 쉽게 생략된다. 띄어쓰기가 무시되는 것은 물론이다. 나아가 기존에 없던 준말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두 번째 음절 이하의 초성이 없거나 ㅎ이라면 말줄임은 더욱 강하게 일어난다. 이를 테면, ‘시험’을 ‘셤’, ‘월요일’을 ‘월욜’로 적는 것이다. 우리말의 파괴니, 국어 정화 운동이니 하는 것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와 같은 현상은, 입이 아닌 손가락 끝을 의사소통 수단의 일부로 삼는 우리들에게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우에 따라 압축의 결과물이 원본 그대로 복원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데, 압축되지 않은 bmp 그림파일을 jpg로 압축하면, 원본은 다시 복원될 수 없다. 원본의 일부를 변형시키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손실 압축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bmp 파일로 바꾼다고 해도, 용량만 커질 뿐, 원본은 아니다.

  어감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어미와 조사가 사라지다 보니, 문자 메시지는 원본과 달리 복원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서 웃는 모습, 우는 모습 등을 본 뜬 이모티콘이 등장한다. 최근에는 웃음소리를 나타내는 ‘ㅋㅋ’, ‘ㅎㅎ’와 같은 것들도 자주 쓰인다. 이들은 자리, 즉 용량을 차지하면서 개별적인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특징 때문에 여지없이 생략된 다른 문장 성분과는 달리, 이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져 거의 모든 메시지에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이모티콘이나 웃음소리가 없으면 왠지 딱딱하고 무뚝뚝한 말투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를 바꾸어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사상된 메시지에서 이와 같은 것들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자 메시지는 체언과 어근 등, 의미상 묵직한 단어들로 가득하고, 이 단어들 사이의 빈 공간은 어미나 조사 대신 이모티콘, 웃음소리로 채워진다. 발신자는 웃음과 울음의 이미지를 빌어, 수신자가 메시지를 자신의 원래 의도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메시지가 때로 손실 압축 된다는 점이다. 손실 압축된 이후에는, 아무리 정교하고 기발한 이모티콘이 첨부되어도 원본 메시지는 복원될 수 없다. 수신자들은 어떠한 수단으로도 메워질 수 없는 메시지와 원본 사이의 간극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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