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비밀의 화원, 박물관을 찾아가다

장마가 끝나면 곧 시작될 한여름 피서철. 남들은 산으로, 바다로를 외치겠지만 일상 속에서 나만의 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가까우면서도 다른 세계에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지금까지의 것 이외의 장르를 원한다면 주변의 미술관을 찾아보는 것을 어떨지. 우리를 부르는 미술관의 손길을 잡아보자.

세계에서 여덟 작품뿐인 루이스 부루주아의 '거미'가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 /송은석 기자 chunchu@ 도착하자마자 야외 조각 공원에 설치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조형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삼성미술관 리움(아래 리움). 이곳은 탁 트인 조경에 우리나라 고미술품을 전시하는 ‘museum 1’과 한국과 외국의 근현대 미술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museum 2’, 그리고 기획전이 열리는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등으로 이뤄져 있다. 세 건물 모두 각각 다른 건축가가 세웠다. museum 1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꼭대기 4층부터 올라가서 한층씩 내려오며 관람을 하게 되는 구조다. 120여점의 국보, 보물급 소장품들을 보다보면 로툰다(지붕이 둥근 원통형건물이나 원형의 홀)의 계단을 내려오는 길 다음 층이 기대된다. 또한 일명 ‘똑또기’라는 PDA를 통해 작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해도 상세한 안내를 들을 수 있다. 한편 museum 2에서는 박완서의 『나목』에 등장하는 박수근의 그림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파리의 아랍문화원 건축으로 유명한 장 누벨이 설계한 이 건물에서는 그 유명한 앤디 워홀의 「45개의 금빛 마릴린」을 놓치지 말자. 리움에서는 위의 상설전말고도 오는 9월 10일까지 두가지 기획전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마크 로스코의 예술’과 ‘백남준에 대한 경의’가 그것이다. 마크 로스코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로 인간의 숭고함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20~30년대와 40년대를 거쳐 50년 전후로 완전한 추상에 이른 그의 예술사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내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은 내가 느낀 종교적 경험과 동일한 체험을 한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도 같은 체험을 해볼 수 있을지 시험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백남준’전은 지난 1월 타계한 故 백남준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특별전시이다. 리움 홍보팀 이경옥 씨는 “선생님은 아티스트와 후원자 관계 등으로 삼성과 계속 관계를 이어 오셨는데 올해 돌아가셔서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며 의의를 밝혔다. 관람 시간은 아침 10시~저녁 6시. 월요일은 휴관이고 목요일은 밤 9시까지 연장개관하며, 가기 전 반드시 미리 예약하고 가야 한다. ▲ 동화작가 존 버닝햄의 4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성곡미술관 /송은석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미술관 하면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은 선입견이 있다면 성곡미술관이 이를 깨뜨려 줄 것이다. 아담한 겉모습이 인상적인 이곳. 최근 몇 달간에 인테리어 리모델링 공사를 마쳐 더욱 깔끔해진 미술관은 복잡한 도심 속 어느 골목 에 숨어 있다. 처음에는 찾아가기가 쉽지 않지만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건너편 골목으로 끈기있게 올라온 자에게는 본관과 별관, 작은 숲으로 된 조각 공원이 아기자기한 뒷동산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최근에는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명으로 꼽히는 존 버닝햄 40주년 특별전 ‘나의 그림책 이야기’가 전시 중이다. 오는 9월 3일까지 여름방학 특별전으로 준비된 이번 기획은 작가의 애틋한 이야기가 애니매이션, 도서, 나무무늬 카펫 등의 소품, 회화, 일러스트 등과 어울려 관람객을 환상 속에 빠지게 한다. 인턴 큐레이터 박영민 씨는 “정신적으로 다섯 살 때 성장을 멈췄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그림과 시선에는 순수함과 재치가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아침 10시~저녁 6시에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읽어 보자.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지역’에 위치 한 북촌미술관은 인사동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이곳 역시 넓지 않은 도로변에 위치하여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언뜻 지나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 미술관은 ‘한중일 초상화 대전’, ‘중국명품유물전’, ‘한중 현대미술 특별전’ 등 그동안 아시아, 특히 중국과 관련된 전시가 많았던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반쪽이’ 최정현의 ‘고물 자연사 박물관전’이 전시되고 있는데 이 역시 여름방학 특별기획전으로 마련됐다. 작가 최정현의 이번 작품들은 모두 폐기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큰 의미를 가진다. 못 쓰는 물건에 가치를 부여해 예술품으로 빚어낸 그의 능력에 관람객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교실 두 개 정도의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작품들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거미와 거미줄 작품이 깜짝 놀라게 한다. 또 한쪽 끝에는 폐숟가락으로 만든 플라멩고들도 무리를 지고 있다. 이처럼 구석구석에도 빠짐없이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오는 9월 24일까지 아침 10시~저녁 6시에 방문할 수 있다.

건물 지붕 위에 조나단 브롭스키가 만든 ‘걷는 사람’ 조각으로 더 유명한 국제갤러리는 경복궁 옆 조용한 소격동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 1982년 개관한 이후 안젤름 키퍼, 요셉 보이스 등 해외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전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해 왔다. 또한 한국 작가들의 해외홍보에도 힘을 써 많은 국내 작가들이 베니스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 등에도 참여하고 해외 미술관 전시에도 초청을 받게 하는 성과를 이뤄 내기도 했다.

오는 30일까지 이곳 벽에는 사진작가 구본창의 작품이 걸린다. 우리대학교 동문이기도 한 그의 이번 전시에서는 배경없이 조선시대 백자 한 두 점만을 근접 촬영해 그 질감까지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백자의 미학을 재해석하면서 한국미술의 중요한 요소인 ‘빈 공간’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도자기 이상의 혼을 가진 용기(容器)로서 보여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화~토요일은 아침 10시~저녁 6시, 일요일은 아침 10시~낮 5시까지 오픈되며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 /일러스트레이션 조영현
최근 친숙한 작품들이 점점 늘어나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으로 관람객을 초대하는 미술관은 비단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로 다른 미술관들을 찾아가 각각의 매력을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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