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5.31지방선거 기간 동안 언론사 사이트내의 게시판, 대화방, 기사댓글 등의 공간을 실명제로 운영해야 하는 것을 선관위 등을 통하여 익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연세춘추 홈페이지를 대행 관리해주고 있는 회사에서 지난 4월6일 춘추로 보낸 이메일의 서두 부분이다. ‘실명제를 택하지 않으면 법 위반이라고?’ 메일에서 처럼 익히 잘 알고 있지 못했던 공직선거법 등등에 대한 무지를 탓하며 ‘연세춘추가 여기 해당된다구?’ 하는 적잖은 당혹감 그리고 일종의 감격(?)과 함께 메일을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메일 내용의 골자는 사이트에 실명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선거법위반이 되므로 실명제를 도입해야 하고, '한국신용평가정보'와 직접 실명 인증 계약을 체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명제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5백만 원의 과태료와 하루마다 50만 원의 가산액을 내야 한다’라는 조항에 ‘움찔’한 것도 있지만 때마침 연세춘추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 게시판에 대한 실명제도입을 추진하고 있던 터여서 별 문제 없이 동의했다. 그러나 머릿속에선 계속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문제는 이후에 나타났다. 몇몇 가입희망자들이 사이트 가입에 오류가 난다는 불만을 제기했고 신용정보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실명인증은 금융기관에 예금계좌를 개설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금계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선거와 관련하여 게시판에 글을 쓸 수도 없게 된 것이다.

5월18일부터 5월30일 까지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 13일간의 실명인증. 이 같은 선관위 정책에 대해 인터넷기자협회와 각종 정보인권단체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정책인데다 개인정보를 침해한다고 얘기한다. 혹자는 “실명인증은 댓글을 다는 사람이 ‘이런 내용의 글을 써도 될까’라는 이른바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들고 이 같은 환경에서 활발한 정치 토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실제로 선관위가 예시한 실명인증 대상 댓글을 보면 ‘OO 정당이 좋다’, ‘어느 후보자가 당선되면 좋겠다’ 정도의 글도 위법사례이고, 이러한 글이 실명인증되지 않고 게시됐을 때에는 이를 ‘지체없이 삭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창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실명제 논의가 다시 수면 위에 올라오기도 전에 이번 선거를 계기로 사실상 이 제도가 정책화 단계에 접어든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물론 실명제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고 반드시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공론화된 논의와 정책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인터넷 글이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언론사 사이트 가입자에게 주민번호를 요구하고 실명제를 도입하게 하다니... 굳이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실명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악성, 명예훼손, 비방 등 문제가 있는 글에 대한 조사와 게시자 파악은 현재도 가능하지 않은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라는 말 아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일까

그러는 가운데 13일의 기간은 지나고 선거는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각 당의 ‘알바’들이 활개 치며 비방, 선전하는 꼴을 보지 않아 좋긴 하지만 무언가 답답하다. 선거가 곧 다가왔는데 만나서 얘기하는 주변 친구들 외엔 다른 사람들이 후보 누구누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다.  흑색선전과 비방을 없애고 건전한 선거문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지만, 건전함 추구하다 너무 건조해진 건 아닌지.. 선거가 지나고 본격적으로 논의될 현행‘인터넷 실명제’의 귀추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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