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사막 속 ‘나’를 찾아 떠나는 구도자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쉬는 인사동. 네거리를 지키는 나무의 푸른 잎사귀가 수많은 문인들이 거쳐간 이곳에 벌써 여름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가며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그들 사이에서 윤후명 작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막을 여행하는 구도자를 닮은 그의 모습은 푸르른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대조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문학 소년의 꿈

올해로 환갑과 등단 40주년을 맞았다는 윤후명. 문학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원래 고등학교 때 원예반에서 활동했는데 후에 원예반이 문예반으로 바뀌면서 덩달아 작품을 쓰게 됐다”며 그때를 회상하며 웃었다. 하지만 습작을 시작하면서 드러난 그의 재능은 마치 주머니 속을 뚫고 나온 송곳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교내외의 각종 상을 휩쓸며 학생잡지 『학원』에 시를 투고해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던 윤후명은 지난 1965년 우리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다.

집안의 반대로 국문과 대신 철학과에 입학하게 됐지만 문학에 대한 꿈은 변함없었다. 문학에 대한 열망은 입학 면접 당시 “문학을 하기 위해 철학과에 왔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윤 작가는 “당시에는 철학이 문학을 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몰랐지만,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그의 대학교 시절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연세춘추」다. 2년 간 기자활동을 했던 그는 “당시 편집국이었던 핀슨관에서 신문지로 불을 때면서 어렵게 신문을 만들었지만 신문사 활동이 글을 쓰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고등학교 문예반과 춘추에서의 활동은 그에게 한 인물과의 특별한 인연을 맺어줬다. 바로 지난 2월 타계한 「연세춘추」 고(故) 김수남 동인(지질·67)과의 만남이다. 그는 오는 2007년 봄에 출판할 예정인 소설 한 편을 내밀며 김 동인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서울대 병원 영안실에 '아! 김수남'이라고만 쓴 봉투를 들고 갔었다. 글을 쓰겠다고 고등학교 문예반에 들어 나를 따르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는 고등학교 2년 후배로 문예반과 춘추에서 활동했던 김 동인을 “잊을 수 없는 각별했던 사이”라며 “수남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사람을 잘못 데려갔다고 생각했다”며 매우 아쉬워했다.

‘나’를 찾아 헤맸던 석가모니처럼

지난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시를 통해 등단한 윤후명은 12년 후 「한국일보」에 소설 『산역』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도 문단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그는 『둔황의 사랑』, 『협궤열차』, 『하얀 배』 등 굵직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아왔다.

사막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뿌리도 거의 없이 바람에 불려다니는 다육질의 낙타풀도 아니요, 뜨거운 모래 위에 거짓말처럼 살아서 바삐 달아다는 작은 갑충도 아니요, 옛 구도자의 희미한 발자국은 더더구나 아니요, 그곳에 역사가 있은 이래 계속되어온 젊음의 모습인 것이다.- 『둔황의 사랑』 중에서

윤후명의 소설은 아름답다. 그의 소설은 한편의 시와 같은 서정성과 완벽성을 갖추고 있다. 이는 그의 작품세계가 시에서 출발한 데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이 내면에서 배어나온 성찰과 그 의미의 재발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이 어렵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에 대해 윤 작가는 “내 작품은 세계와 나에 대한 성찰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이 어렵게 느낄 수 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초기작인 『산역』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 모두가 전부 1인칭 ‘나’로 시작된다고 말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것은 “성찰을 통해 나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둔황의 사랑』을 비롯해 『삼국유사 읽는 호텔』까지 진한 연꽃 향기가 작품 곳곳에서 묻어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윤 작가는 “나는 종교적인 작품을 쓰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그토록 불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일까. 이에 대해 그는 불교가 가지고 있는 토착성과 절대적인 신을 상정하지 않는 종교적 특성을 뽑았다. “불교는 절대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중시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찾는 여정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불교에 대한 관심은 앞서 이야기한 ‘자아탐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국민소득이 1백 달러가 채 안 되던 시절, 무엇보다 ‘돈벌이’가 쉽지 않은 작가의 길을 걸었던 그는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하면서도 “그래도 육십 평생 좋아하던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작가란 모름지기 옛것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색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뒤를 이어 작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주문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시와 소설을 통해 계속해서 ‘나’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겠다는 윤후명. 오늘도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길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문득 사막의 향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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