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아카라카의 1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노천극장 무대 위에 두 무리의 학생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서있었다. 잠시 후 힙합 곡이 노천극장 너머로 울려 퍼지고 그들은 격렬하게 상대방에게 춤을 주고받기를 반복했다. 바로 우리대학교 중앙동아리인 ‘하리’와 일본 와세다 대학교 댄스동아리 학생들이 걸스 힙합, 하우스, 비보잉 등 갖가지 댄스 배틀을 벌인 것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의 비트에 맞춰 춤으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그들의 사이에는 의사 소통의 장애는 없는 듯 했다. 만국 공용어, ‘몸짓’이 그들을 이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 대사가 아닌 몸짓과 소리, 리듬과 비트만으로 구성된 비언어 퍼포먼스), 즉 말없는 몸짓으로 이야기하는 문화가 주목 받고 있다.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그려낸 우리나라 최초의 넌버벌 퍼포먼스『난타』가 그 선두에 있다. 『난타』는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전용관을 둘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중이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상황 설정을 바탕으로 활발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난타』와 같은 넌버벌 퍼포먼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관객들은 대사를 못 듣는 데서 오는 답답함보다 마음을 울리는 몸짓과 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난타』의 뒤를 이을만한 색다른 넌버벌 퍼포먼스가 홍대앞 비보이 전용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길거리에서만 보던 비보이(B-Boy,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사람)들의 공연이 정식 무대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넌버벌 퍼포먼스『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공연 기획자 방현승씨는 “처음에는 거리 공연에 누가 입장료를 내고 보겠느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요 언론들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비보이 공연을 신 한류 상품으로 선정했다”며 발전하고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난 2005년 12월부터 시작돼 현재 오픈 런(관객의 호응이 있을 때까지 공연을 계속함)중인 비보이 전용극장은 대부분 젊은이들로 가득 차있었다. 외관은 여느 대학로 소극장과 흡사하지만 공연 전에 안내원의 이색적인 당부 사항이 들려온다. 관객들에게 핸드폰을 켜놓고 통화해도 되며,(커다란 음향소리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공연에 집중하다보면 그럴 일이 없다) 사진 촬영해서 홈페이지에 올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공연 내내 몸을 관통해 모든 신경을 깨우는 비트와 음악에 맞춘 비보이들과 비걸들의 윈드밀, 토마스, 에어트렉, 헤드스핀 현란한 동작이 이어진다. “몸짓 하나 하나에 주인공이 처한 감정이 잘 드러나서 말로 하는 연극보다 오히려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는 건국대학교 이민영양(소비자 정보?06)은 “앞으로도 이런 넌버벌 퍼포먼스가 다양한 방향으로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관람 소감을 덧붙였다.

또한 전반적으로 흐르는 코미디 속에 태권도, 태껸 등의 동양무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넌버벌 퍼포먼스의 장르에 신선함을 준『점프』도 오픈 런 진행 중이다. 기존 공연과는 다른 고난이도의 아크로바틱이 쓰였다는 점과 우리나라의 전통 무술이 전 세계인들에게 파급되는 영향력에 주목할 만하다.

내 몸으로 내보는 목소리

이처럼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몸짓을 앉아서 즐기는데 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직접 표출하려는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 예로 댄스 동아리 ‘하리’에는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는 추세다. ‘하리’ 회장 서라경양(법학?05)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동작을 살펴보면 사람의 개성이 묻어 나온다. 심지어 같은 동작도 표현하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며 “춤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아리 외에도 신촌 근처 재즈 댄스 학원을 찾는 학생들이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데서 만족감을 얻고 마음에 쌓아 두었던 감정을 표출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위소영양(공학계열?06)은 “요즘엔 자신을 표현 하는 스킬이 한 개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춤은 그 중에서도 매력적인 분야다.”고 얘기한다.

새롭게 부각 되고 있는 의사 소통의 방식, 몸짓. 오랜 시간동안 언어의 뒷전에 밀려왔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몸짓의 가능성을 살펴볼 때가 온 것이다. 비록 그 시작은 『스텀프』, 『탭덕스』 등 뉴욕에서 였지만 우리 방식대로 창조한 다양한 넌버벌 퍼포먼스는 전세계인의 공감을 살만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스스로 리듬과 비트에 맞춰 자신을 표현하고 당신의 옆에서 함께 춤추고 땀 흘리는 이의 숨소리도 놓치지 말자. 말의 소리보다 더욱 크고 강렬한 몸짓을 주고받다보면 장시간의 대화 이상의 친밀감이 전해져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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