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 『구토』라는 단편이 있다. 소설은 친구의 부인과 간통하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소설가 무라카미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소설 속에서 일러스트레이터는 얘기한다. “무라카미씨는 내 속에 있는 어떤 죄책감이 구토라든가 환청이라든가 하는 형태로 결상(結像)된 게 아닌가 하고 말하고 마는 거로군요.”
『보이지 않는 물결』이 보여주는 영상은 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래된 소설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장의 부인과 정을 통하는 주인공 쿄지와 그가 느끼는 죄책감, 구토증세, 자살 욕구, 그리고 감정 없는 얼굴 속에 드러나는 자신에 대한 회의. ‘태국의 타란티노’로 불리는 펜엑 라투나루앙 감독은 영화를 통해 몽환적이고 나른한 영상 속에 살인을 저지른 인간의 죄의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네이버 자료사진
쿄지는 자신의 불륜을 눈치 챈 사장의 명령으로 부인을 독살한다. 그리고 사장의 권유로 마카오를 떠나 태국 푸켓으로 가는 여행을 한다. 하지만 여행은 사장에 의해 설정된 ‘보이지 않는 위협’이었고 이에 쿄지의 위험은 계속된다.
관객들은 바다를 떠다니는 여객선에서 쿄지가 겪는 알 수 없는 일들을 보며 몽환적인 세계로 빠져든다. 고장난 수도꼭지, 흔들리는 배, 저절로 잠긴 출입문, 같은 말만 반복하는 안내원, ‘나’를 아는 척하는 수상한 남자와 홀로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젊은 여자, 노이. 여객선은 마치 유령의 집과 같은 분위기를 내며 쿄지에게 공포감을 심어준다.
쿄지가 크루즈에서 겪은 ‘보이지 않는 위협’은 푸켓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호텔에서 강도를 만나 돈을 잃고 사장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에 사장은 한 남자를 보낸다. 그러나 쿄지는 그와의 만남에서 자신이 느끼는 위협이 사장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챈다.
크루즈를 벗어난 후에도 영화엔 몽환성과 괴상함이 이어진다. 쿄지는 마치 아이처럼 어디서나 우유만 마셔대고 태국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만난 남자는 ‘생뚱맞은’ 일본 가라오케를 부른다. 여기에 신비로움과 괴상함을 더해주는 영상미가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쿄지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며 그의 위협감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또한 왕자웨이 영화로 유명해진 사각앵글(약간 기울어진 각도의 앵글)은 관객들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데 도움을 준다. 거기에 영화 내내 흐르는 음울한 사운드가 더해져 심난한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영화의 후반부에 쿄지는 죽은 듯이 보이지만 다시 살아있는 채로 나타난다. 또 그는 사장에게 복수할 기회를 맞지만 사장과 노이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이내 포기하고 만다. 이런 영화의 후반부는 마지막 결말까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해 관객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또한, 주인공 쿄지를 통해 인간의 죄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영화 속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쉽게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물결』. 영화는 죄를 지은 남자의 여행이다. 주인공을 맡은 아사노 타다노부의 표정은 시종일관 담담하다. 그러나 카메라의 시점과 일치하는 그의 눈에 이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바다와 잔잔한 물결. 이는 불안함에 사로잡힌 그가 잠시나마 안식을 찾기 위해 바라본 풍경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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