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결 (영문․05)

우리들은 무슨 고민이 그리도 많은 걸까? 중도 여자화장실 벽면에 빼곡히 적힌 고민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드들 발랄하고 멀정하게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이 이렇게나 많다니!’하며 놀라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연애관계, 성과 관련한 깊은 고민들에서부터 인간관계의 문제까지, 20대 초반의 또래 여자들이 털어놓지는 못해도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고민이란 고민들은 다 모아 놓은 것만 같다. 너무 공감은 가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는 골칫덩어리 혹은 반복되는 생채기, 그래서 결국 화장실 벽에 끄적이고 마는 우리들만의 비밀…….

그럴 때 『언니네 방』을 만났다. 『언니네 방』은 여성들이 속내를 털어놓는 온라인 커뮤니티 ‘언니네(www.unninet.net)’의 ‘자기만의 방’에서 그동안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화장실의 이야기들이 적나라하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언니네 방』은 그 고민들을 딛고 넘어선 여자들의 용감하고 반짝반짝한 지혜다. 『언니네 방』에는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될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검열 때문에 망설였지만 너무나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듬뿍 담겨있다.

‘섹스할 때 넌 끝까지 이기적이었지’, ‘쿨한 남자? 나쁜 남자?’, ‘내 몸이 원하는 걸 참고 싶지 않아’, ‘성정체성의 갈림길에서’, ‘사랑이라는 말로 용서되지 않는 것들’, ‘행복은 브라 컵 순이 아니잖아요’ 등 『언니네 방』에 담긴 글의 제목들이다.
그 생생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신나게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함께 웃고, 공감하고, 혹은 분노 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었구나!’하는 속 시원함,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책 안의 그녀들이 대신 해 준 것만 같은 카타르시스, 지금 나의 고민을 먼저 겪어온 언니들로부터 얻게 되는 위안과 용기는 이 책이 20대의 우리에게 주는 알자배기 선물이다.

학점 따랴, 영어 공부하랴 취업 준비하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아니 혹은 그저 압박감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만 받을 때도 좋은 친구들과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금세 따뜻해지는 것처럼, 『언니네 방』은 상쾌한 휴식과 만족을 준다. ‘성에 대한 유쾌한 수다 한 판’, ‘성적 모욕에 대처하는 법’, ‘버자이너 인터뷰’… 이 통쾌한 속닥거림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이 몰입하게 한다. 마치 글을 쓴 사람, 그리고 이 순간 어디선가 함께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흥분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인간관계는 점점 넓어지지만 그 가운데서도 항상 소통의 부족함과 무기력함을 느기게 된다. 일기에는 몰래 써두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보여주고 싶고 말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언니네 방』에서 소통의 짜릿한 즐거움을 만끽해 봤으면 좋겠다. 이야기하기, 듣기, 공감하기의 행복함은 쉽게 찾아드는 경험은 아니니까.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고민들은 이제 그만 집어던져버리고 『언니네 방』의 용감한 언니들처럼 저벅저벅 삶을 향해 걸어 나가는 나와 내 친구들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각각 화성과 금성에서 왔다는 말만 믿고 여자들을 이해하거나 여자들과 소통하기를 어려워하는 남자들에게 『언니네 방』은 필독서라는 것을 살짝 귀뜸해주고 싶다.
 /김 한 결 (영문·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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