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사학법) 재개정을 둘러싸고 다시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사학법을 재개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미 내용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법안들의 심의마저 거부하였다. 열린우리당은 나머지 야당들과 협상하여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등 민생현안과 관련한 법안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거쳐 통과시켰다. 국회의장 공관이 의원들의 농성장으로 변하고 국회의사당은 의원들과 정당관계자들의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통령의 호소와 중재도 무위에 그치고 임시국회는 폐회되어 현안이 되고 있는 2,000여건의 법안처리가 계속 지체되고 있다. 이런 비생산적인 국정운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할 뿐이다.

국정 파행의 제일차적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야당의 장외투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여야 원내대표회동에서 여당 대표가 사학법 재개정처리를 약속하였다면 성의를 가지고 재개정 논의에 임해서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였어야 했다. 특히 대통령의 양보 제안을 묵살한 것은 앞으로 국정의 원활한 운영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것이다. 여당이라면 민생법안 처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대범하게 야당과의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야당도 여당 못지않게 정국 파행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사학법이 교육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사안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국정을 파행으로 몰아갈 정도인지 묻고 싶다. 법치주의의 헌법정신에 따라 국정현안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하면 산적한 국정은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다. 특히 많은 국민들이 사립학교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 및 공공성을 제고하는 사학법의 개정에 찬성하였고 그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은 국민의 외면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강화가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임을 확인하게 된다. 의회주의는 소수파의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심의권을 보장하면서 다수결로 국정현안을 결정하도록 요구한다. 소수파의 참여권도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지만 소수파의 의사진행방해로 다수결의 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다수파의 전횡에 대하여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은 소수파의 의사진행방해가 관용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갔다. 소수파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일은 더 이상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소수파는 자신들이 옳다면 끊임없이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 내어 다음 선거에서 다수파가 됨으로써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여당도 과거처럼 야당을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제압의 상대로 이해하고 다수파의 힘만으로 현안을 해결하려는 안이한 자세를 버리고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집권당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여야 모두 대승적으로 사학법 정국을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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