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언제나 즐겁다. 화려하고 활기차며 뜨겁다. 그 모습이 청춘과 매우 닮아있다. 여기, 이천의 도자기 축제가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흙이 좋고, 물이 깨끗해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좋은 쌀이 유명한 이천. 이곳은 설봉산성 및 주변 산지에서 출토된 무문토기 등으로 미뤄 짐작건대 적어도 청동기 시대부터 토기제작이 활발하게 이뤄진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꾸준히 명맥을 이어온 지역 축제가 그리 많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천 도자기 축제의 스무 돌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2년 전에도 와봤었는데 참 많이 변했어요.” 서울 동대문구에서 온 김강옥씨(35)는 이야기한다. “평소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흙놀이 체험하는 곳에 찾아다니죠. 서울에서도 흙과 관련된 전시회나 체험교실이 열리면 어김없이 찾아가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묻자 아이들이 도시에 살기에 흙과 가까이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좀 더 흙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일부러 찾아다닌다고 답한다.
도자기 축제를 즐겨 다닌다는 그녀에게 올해 이천 도자기 축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솔직히 체험의 확대를 바랬어요. 그런데 조금 실망스럽네요. 여주 도자기축제는 흙 밟기, 던지기 등 흙과 친화될 수 있는 놀이들이 풍성한 데 여기는 달랑 물레밖에 없잖아요. 물레 돌리는 건 여기 아니더라도 많거든요. 축제의 대부분이 상업화된 모습도 그다지 보기 좋진 않네요.” 말을 끝마치고 나서 그녀는 7살 난 아들을 돌아보며 아이의 새로운 작품을 보고 흥미로워 했다.
불과 흙의 요변(窯變)? 요변(妖變 요사스럽게 변하는 행동)!
도자기, 그 자체만으로 세상을 논하다.
제법 어둑해진 하늘, 시계를 보니 곧 폐장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도자 천년의 거리’의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손바닥을 초벌 도자기 판에 찍어서 타일로 만드는 것이다. 이 타일들은 오는 7월 축제장 바닥에 깔릴 예정이라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 기자 또한 ‘역사적인 흔적’을 남겨보려 손바닥을 지그시 눌러본다. 훗날 다시 와서 자신의 손바닥이 찍힌 타일을 찾아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가 아니겠는가!
청춘을 맞이한 축제의 볼거리는 도자기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체험을 통해 한층 더 흙에 가까워지려는 관광객과 자부심 하나로 똘똘 뭉친 장인들, 활기찬 도우미들의 모습, 이 모두가 축제를 건강하게 만드는 요소들이었다. 이토록 오랫동안 축제가 명맥을 유지해 온 이유는 달리 있던 게 아니었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만물의 소멸과 생성을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 이 5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도자기는 이 5가지 중 무려 3가지(물, 불, 흙)나 모여 만들어진다. 그러하니 도자기 그 자체로 우주를 논하는 것이 어찌 지나치다 하겠는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발을 딛고 있는 이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도자기를 보고 있노라면 절이라도 해야 될 듯싶다. 예전엔 사치품이라고만 생각했던 도자기를 곁에 두고 즐기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문득 이해가 된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오행들, 가까이는 있지만 정작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발로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과 불과 흙의 결정체인 도자기, 이천의 중심에서 ‘소우주의 결정체’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