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언제나 즐겁다. 화려하고 활기차며 뜨겁다. 그 모습이 청춘과 매우 닮아있다. 여기, 이천의 도자기 축제가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흙이 좋고, 물이 깨끗해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좋은 쌀이 유명한 이천. 이곳은 설봉산성 및 주변 산지에서 출토된 무문토기 등으로 미뤄 짐작건대 적어도 청동기 시대부터 토기제작이 활발하게 이뤄진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꾸준히 명맥을 이어온 지역 축제가 그리 많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천 도자기 축제의 스무 돌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베테랑 옹기장이도 떨릴 때가 있다! 중간고사가 끝난 지난 4월 30일, 무작정 이천행 버스에 올라탔다. 1시간 남짓 지났을까? 터미널 입구부터 시야에 축제 안내 깃발과 표지판들이 들어온다. 마음이 괜히 설렌다. 부푼 마음을 안고 축제장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옹기장의 혼’이라는 시연행사. 진흙의 성분과 굽는 온도의 차이에 따라 도기와 자기와 옹기가 구분된다고 상세히 설명하던 옹기장이 김용호씨(33). 그의 익숙한 손놀림 앞에 점점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든다. 손재주만큼이나 구수한 입담 또한 일품이다. 올해로 이 ‘옹기장의 혼’을 시연한 지 3년째라는 그에게 에피소드를 들려 달랬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꺼낸다. “에휴, 그래도 여기 한국에서 하는 건 괜찮아요. 외국에서 시연할 때는 땀 이 다 난다니까. 잘못하면 나라망신이잖우. 제일 당황했던 적이 언제냐면 물레 돌릴 때 적시에 물을 묻혀야 좋은 모양이 나오는 데 긴장한 나머지 타이밍을 놓친거여. (옹기) 입을 만들어야 되는데 사람들 눈은 다 내 손을 향해있지, 흙은 말라버렸지. 머리가 하얘지더라구.” 말을 마치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 그의 손에서 또 하나의 옹기가 탄생한다.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자,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는 탄성이 잦아들자 다시 유약에 대해서 설명한다. 요즘은 거의 모든 옹기에 화학제품 성질의 유약을 쓰는 데 아직도 이천에서는 잿물과 부엽토를 섞어 만든 천연 자연물의 유약을 쓴단다. 많은 관광객들이 “좋은 옹기는 어떻게 고르는가?”라고 묻자 옹기장이는 표면이 매끄러운 것보다 까칠하고 광이 나지 않는 것을 택하라고 답한다. 신기함의 공유, 그래도 아직은 부족한 체험의 현장 흙놀이 공원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물레 체험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박은화양(단국대,도예·03)은 학과 특성상 이런 행사에 자주 참여한다고 한다. 전공에 도움도 되고 아르바이트로도 제격이라고 말하는 그녀. 본인은 매일 하는 일이라 신기해할 게 없는데 사람들이 이런 체험을 신기해할 때 도리어 그 모습이 더 신기하다고 한다. 일종의 ‘신기함의 공유’라고나 할까?

  “2년 전에도 와봤었는데 참 많이 변했어요.” 서울 동대문구에서 온 김강옥씨(35)는 이야기한다. “평소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흙놀이 체험하는 곳에 찾아다니죠. 서울에서도 흙과 관련된 전시회나 체험교실이 열리면 어김없이 찾아가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묻자 아이들이 도시에 살기에 흙과 가까이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좀 더 흙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일부러 찾아다닌다고 답한다.

 도자기 축제를 즐겨 다닌다는 그녀에게 올해 이천 도자기 축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솔직히 체험의 확대를 바랬어요. 그런데 조금 실망스럽네요. 여주 도자기축제는 흙 밟기, 던지기 등 흙과 친화될 수 있는 놀이들이 풍성한 데 여기는 달랑 물레밖에 없잖아요. 물레 돌리는 건 여기 아니더라도 많거든요. 축제의 대부분이 상업화된 모습도 그다지 보기 좋진 않네요.” 말을 끝마치고 나서 그녀는 7살 난 아들을 돌아보며 아이의 새로운 작품을 보고 흥미로워 했다.


 

 불과 흙의 요변(窯變)? 요변(妖變 요사스럽게 변하는 행동)!

 

도자기 꺼내는 데 한창인 전통 가마로 발을 옮겼다. 가마 옆을 지나는데 약간의 온기가 느껴진다. 토천도 윤석신씨(47)는 도자기 일을 20년 동안 해왔다고 한다. 꺼내는 데 따로 ‘메뉴얼’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그건 감(感)이죠!”라고 한마디로 정리한다. 도자기는 보통 가마의 온도를 섭씨 1천2백도~1천3백도까지 올려 굽고 나서 이틀 후에 꺼내는데 그 ‘이틀’은 물리적인 의미의 48시간이 아니라 감으로의 이틀이란다. 오래 놔두거나 너무 일찍 꺼내면 발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본래의 색깔이 탁해지고, 견고함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도자기요, 참 대단하지 않아요?” 갑자기 그가 묻는다. “오랫동안 이 일을 했지만 할 때마다 참 경이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세계(도자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서는 이것을 ‘불과 흙의 요변(窯變: 도자기를 구울 때, 통풍이나 불길 등의 영향으로 도자기가 변색하거나 모양이 일그러지는 일)’이라고 하죠.” 하며 검게 그을린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참 건강하다.

 

                                  도자기, 그 자체만으로 세상을 논하다.


 제법 어둑해진 하늘, 시계를 보니 곧 폐장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도자 천년의 거리’의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손바닥을 초벌 도자기 판에 찍어서 타일로 만드는 것이다. 이 타일들은 오는 7월 축제장 바닥에 깔릴 예정이라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 기자 또한 ‘역사적인 흔적’을 남겨보려 손바닥을 지그시 눌러본다. 훗날 다시 와서 자신의 손바닥이 찍힌 타일을 찾아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가 아니겠는가!


 청춘을 맞이한 축제의 볼거리는 도자기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체험을 통해 한층 더 흙에 가까워지려는 관광객과 자부심 하나로 똘똘 뭉친 장인들, 활기찬 도우미들의 모습, 이 모두가 축제를 건강하게 만드는 요소들이었다. 이토록 오랫동안 축제가 명맥을 유지해 온 이유는 달리 있던 게 아니었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만물의 소멸과 생성을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 이 5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도자기는 이 5가지 중 무려 3가지(물, 불, 흙)나 모여 만들어진다. 그러하니 도자기 그 자체로 우주를 논하는 것이 어찌 지나치다 하겠는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발을 딛고 있는 이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도자기를 보고 있노라면 절이라도 해야 될 듯싶다. 예전엔 사치품이라고만 생각했던 도자기를 곁에 두고 즐기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문득 이해가 된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오행들, 가까이는 있지만 정작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발로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과 불과 흙의 결정체인 도자기, 이천의 중심에서 ‘소우주의 결정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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