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역만리 타국에서 우연히 만난 고독한 두 남녀, 밥과 샬롯 /네이버 자료사진
‘사랑엔 특별한 언어가 있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이역만리 일본에서 우연히 만나게된 젊은 유부녀 샬롯과 50대의 할리우드 배우 밥 해리스. 마음 깊숙한 곳의 고독감은 낯선 이국에서 오는 단절감과 어우러져 둘 사이에 작용하는 묘한 끌림의 매개가 된다. 그러나 ‘고독’에서 비롯됐기 때문인지 그들은 동질감과 애정, 우정으로 뒤범벅된 감정을 느끼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주일간의 관계를 맺어간다. 어쩌면 내심 고독과 소외의 필요조건인 사랑이 서로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두드러지는 두 주인공의 텅 빈 시선과 그 시선이 향하는 공허한 도쿄의 시가지 풍경. 바로 그 빈 곳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카메라는 참으로 경이롭다. 두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는 여타 로맨스 영화의 앵글보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두 인물을 가만히 응시하는 이 영화의 앵글은 살며시 몸이 떨리는 기묘한 경험을 가능케 한다.

감독은 표현에 있어서도 여백의 미를 남기며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를 넘긴다. 영화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꺼내놓으며 소통한다는 것의 어려움, 말과 말 사이의 소통부재와 고독을 유창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말로써 형상화되진 않지만 ‘진심’이란 이름은 의미를 잃은 채 시나브로 상대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꽂히고, 타인과 타인은 서로에게 결코 통역될 수 없는 말들을 꿀꺽 삼켜 되새김질하는 수밖에 없다. 도쿄라는 거대한 공간, 하나의 섬에서 느끼는 이방인의 정서는 이러한 점을 극대화시킨다. 마지막 장면, 밥이 샬롯에게 남기는 들리지 않는 귓속말처럼 의미를 괄호 안에 숨겨놓은 채 영화 속의 두 사람에게도, 스크린 앞의 관객들에게도 소통의 가능성을 되묻는다.

소통하기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 발견하는 소통의 가능성, 낯설음과 익숙함의 충돌 속에서 안식을 찾아 파란 눈동자의 두 사람이 그려가는 로맨스는 정말 훌륭하다. 그러나 로맨스를 넘어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고독에 대해 묻는다면 구시렁거리는 쪽을 택할 것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 소통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영어로만 말하고 일어로 말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음식점에서 주문한 샤브샤브를 보며 “왜 손님이 직접 요리해야하는 거죠”라고 말하는 샬롯. 왜 세계 공통어인 영어로 친절하게 표시돼 있지 않은지, 왜 자신과 문화가 다른지, 왜 이토록 자신을 고독하게 만드는지 묻고 있을 뿐이다. ‘왜 이 세상은 도무지 소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되먹었을까’라는 영화의 자조적인 질문에 아주 간단하게 대답을 던진다. ‘당신 스스로 당신을 가둬놓았기 때문이라고…’

물론 소통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 영화에 대한 오독이 되겠지만 극단적으로 본다면 잡아주길 바라는 손만 보일 뿐 타인을 향해 내미는 손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철저히 혼자가 되려는 자신을 망각한 채 외로움의 책임을 주변에 전가하려는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불편하다. 결국 소통의 가능성을 묻던 영화는 서로 접근불가능함을 오히려 스스로 증명하는 모순된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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