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기인한 무식은 자랑이 아니다

  요즘 현대사진의 트랜드를 살펴 보면 더 이상 거대담론을 주 소재로 삼지 않는 듯 하다. 그 빈자리를 어느 순간부터 개인주의적 감수성을 담는 작품들이 메꾸고 있다. 작은 예로 핸드폰과 소형 카메라로 찍는 피사체는 거의 대부분 자신의 모습을 담는 셀프 카메라 혹은 신변잡기식 소재가 대부분이다. 비단 사진계의 분위기만 그렇진 않은 듯하다. 이런 문화는 이미 대학에까지 침투한지 오래되었으니까.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개인주의적 세태가 반영된 대학가의 예가 두개가 있다. 하나는 이번에 누군가에 의해 땅에 떨어진 후 리플과 함께 다시 백양로에 등장한 텔레토비 현수막 두장. 내가 분석하기에 출처 불분명한 현수막의 요지는 ‘구시대적인 본관 점거 그만하고, 총학은 학생들 공부 방해 말고 조용하게 학교 다녀라’ 라는 듯하다. 나머지 하나는 수요문화제. 수요일 점심시간마다 종합관까지 울리는 소음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다는 후배들의 불만을 종종 접하게 된다. 각각의 주장은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학생총회 및 본관점거, 수요문화제는 학교 생활에 충실한 학생들에게 충분히 방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현재상황으로 미루어 지금까지 투쟁을 통해 가시적인 결과를 얻은 것이 없기에 학생들의 불만이 클 수도 있음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연세인들에게 한가지 묻고 싶다. 과연 여러분들은 이러한 일들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역사 속에 등장하는 투쟁은 극단적으로 말해 권력을 지니지 아니하는 자가 최후에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과 같은 것이다. 취재도중 만나본 총학생회의 입장 또한 그러했다. 관성적으로 본관점거 등의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많은 고심을 한 끝에 최후의 수단으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요문화제 또한 마찬가지다. 동아리를 해 본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축제와 특별한 동아리 행사 날이 아닌 이상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기회는 학내 수요문화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후무하다는 것을. 사실 이러한 것들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라 사료된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 개인의 역량발전에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런 경쟁 시대 속에 살아가는 한 연세인으로 시대의 바뀜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 속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될이들 마져 자신의 권리만을 돌보고 타인에 대해 무관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도리어 개인의 역량 제고를 위해서라도 시대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취업준비 및 다음 주부터 시행되는 시험공부를 팽개치고 변화에 적극 참여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냥 벚꽃 사진 찍는데 플랑카드가 방해된다고 짜증만 낼 것이 아니라, 저게 왜 저기에 걸려있는지에 대해, 학교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 관심 한번만 가져달라는 말이다. 무관심에 기인한 무식은 자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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