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 이미나 작가를 만나다

“아침에 일어나면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마치 행복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의 주문처럼 달콤한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의 마지막 멘트. ‘늘 우리가 듣던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면 나처럼 울고 싶은지’라고 묻는 노랫말처럼 라디오는 단지 음악과 사연만을 남기지는 않는 듯하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라디오에 맡기고 한번쯤은 대책 없이 감상적인 정서에 흠뻑 빠져도 좋을 것 같은 어느 봄날, 라디오 작가 이미나씨를 MBC 방송국 라디오 부스에서 만났다.

이 모든 것이 운명일지도

늦은 밤, DJ 성시경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어주는 행복한 메시지에 자신도 모르게 주파수를 고정한다. 매일 밤 자정에 방송되는 ‘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MBC FM4U, 진행 성시경)’의 숨은 공로자 이미나 작가. 그녀는 지난 2000년부터 4년 동안 ‘이소라의 음악도시’에서 특유의 사랑 이야기로 전국의 꽃처녀, 꽃총각들(음악도시 청취자를 일컫는 말)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음악도시가 처음 맡았던 프로그램인 만큼 다른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솔직히 못해봤어요. 막상 그만둬버리면 허전할 것 같고 무서워서…”라는 이 작가는 ‘음악도시’를 좋아하는 청취자에서 작가가 돼버린 행복한 경험을 갖고 있기에 그 마음이 더욱 애틋하다.

가수 신해철이 진행하던 ‘음악도시’의 초창기, 청취자 입장에서 엽서를 보냈다가 신해철로부터 “이분은 꼭 라디오 작가가 되셔야 합니다”라는 칭찬을 받기도 한 이 작가는 잡지에 실린 글이 방송국 PD의 눈에 띄여 작가의 길을 걷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라디오를 즐겨들었다는 그녀는 “일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하루에 한번쯤 말랑말랑해지는 시간을 주고 싶어요”라며 “라디오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라디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보여줬다.

라디오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이 작가의 손을 거쳐야만 비로소 라디오를 타고 흐를 수 있는 방송 내용에는 유달리 사랑과 연애, 결혼, 이별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현재도 ‘사랑을 말하다’라는 코너를 통해 사랑에 대한 설레고 아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녀는 ‘음악도시’ 시절 연재한 코너 ‘그 남자, 그 여자’가 책으로 출간돼 60만부를 훌쩍 뛰어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영예를 얻었다. “60만부, 신기하지 않아요?”라며 발그레한 표정을 지은 이 작가는 인터넷에 게재된 자신의 글을 보면 아직도 깜짝 놀란다며 수줍게 웃었다.

“서점에 가 보면, 사랑 이야기는 많은 것 같아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똑똑한 책들이 많은데,『그 남자, 그 여자』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어떻게 하라고 해봤자 소용없다는 건 누구보다 사랑을 한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라며 독자를 위해 남겨둔 여백의 편안함을 인기비결로 꼽았다.

특히 후속편인『그 남자, 그 여자 2』에서는 스페인의 마드리드, 스위스의 루체른, 러시아의 모스크바, 아일랜드의 더블린 등을 돌아본 여행담과 우연히 만난 이에게 치즈 케이크를 얻어먹었다는 자잘한 에피소드를 함께 담아 생생한 느낌을 더해준다. “노어노문학을 전공해 러시아를 자주 찾으면서 여행에 첫 눈을 떴다”라는 그녀는 며칠 전에도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올 만큼 여행을 사랑하고 있었다.

내일을 향해 꿈꾸는 작가

자신이 라디오의 일부였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라디오 작가가 이제는 전국 청춘남녀를 웃고 울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앞으로도 많은 계획을 갖고 있다. 기회가 주어지면 여행기를 쓸 계획도 있고, 작사가, 드라마 작가로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싶은 그녀는 목표를 향해 침착하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해보니 다양한 일에 도전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커요”라며 그녀는 학생들에게 겁내지 말고 뭐든지 도전해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살랑 보드라운 봄바람의 유혹으로 방송국에만 있는 것은 왠지 손해보는 듯한 날, 기자가 슬쩍 남자친구가 있냐는 말을 건네자 결혼할 준비가 돼있는 ‘그 여자’는 있지만 아직 ‘그 남자’가 없다고 웃어 보인 이미나 작가. 찬바람 속에서 다시 찾아오는 봄처럼 그녀에게도 그렇게 다시 사랑을 꿈꾸는 날이 다가오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그 남자, 그 여자’가 이제는 행복하게 그려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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