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책실 박성희간사

지난해 노점을 하던 한 청각장애인이 벌금 70만원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얼마나 지독한 생활고였으면 목숨을 끊었을까’ 하며, 빈곤층 최저생계보장의 허와 실로만 질책하면서 이 사건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의 술값도, 골프채 한 번 휘두를 만큼도 못 되는 단돈 70만원. 자살을 한 청각장애인도 그저 돈 때문에 목숨을 끊었던 것은 아니었다. 장애 때문에 단 한 번도 인간다운 대접받지 못했고, 장애 때문에 배우지 못했고, 장애 때문에 노점상 단속에서 당당히 항거하지 못했던 설움 때문이었다. 가족들의 고생을 덜어주기는커녕 가난의 굴레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암담함에 절망하며,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어버리고 쓰러져간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이미 수 없이 많은 장애인이 차별에 짓눌려 압사 당해왔던 과거이기도 하며, 겨우 목숨을 연명해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평생 차별에 짓눌리다 지쳐 쓰러질 450만 장애인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장애인에게는 자신이 가진 장애보다 사회의 편견, 불편하고 감옥 같은 사회시설, 사회참여의 기회박탈 등 불의한 사회로부터 오는 사회적 장애가 더 크다.

 2005년 9월 16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을 통해 발의된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안)(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를 중심으로 전 장애계가 합심하여 3년이 넘게 준비한 법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노무현 정부의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로 인한 각 부처의 차별금지법 논의 중단’ 지시로 보건복지상임위원회에서 안건상정이 차일피일 미뤄져 논의조차 되지 않다가 6개월이 지난 지금 지난 4월 4일에 보건복지상임위원회에서 비로서 법안소심위로 회부되어 논의 되었다. 법안소심위는 여성, 노동, 장애 등 모든 영역을 포괄한 보편적인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차별금지법이 제출되면 그때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함께 비교·검토하는 것이 상호간 모순도 없을 것이고 중복도 없을 것이라 본다며 구체적인 심의를 미뤄둔 상태다.

인권위의 차별금지법은 장애라는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장애인차별금지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 이는 현재 권한 범위가 협소하기 짝이 없는 인권위가 장애인차별문제를 얼마나 해소하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보편성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인권위의 차별금지법의 제정 여부를 떠나서, 장애인 차별의 문제는 보편성과 장애라는 특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이 법률을 실제로 실효성 있게 시행시킬 수 있는 독립적인 장애인차별시정기구를 통해 해결 될 수 있다. 이에 전장애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가열찬 투쟁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인권위에서 농성을, 국회앞에서 1인시위를, 거리 서명전, 의원면담 요청, 인권단체와의 협력 구축 등 지난한 싸움은 계속 진행중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장애인당사자들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사람이 장애의 유무를 떠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구성원 모두의 지지를 통해 소외를 넘어 참여로 차별을 넘어 평등으로 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이 장애를 입은 것은 결코 그들 조상이나 부모의 잘못 때문이 아니고 그들 자신이 타고난 부정한 운명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장애는 인간의 탐욕이 야기한 불의한 사회, 자연환경에서 누군가가 입어야 할 장애를 대신 걸머진 희생양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공유해야할 의무가 있다. 장애인에 대한 연대적 책임의식, 이것이 장애인 인권의 기본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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