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들기 전, 나는 가끔 천장을 바라보며 얼마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내 머릿속을 흘러가는 수많은 생각들, 그 시공간 사이에 연세춘추와 나라는 새로운 화두가 비집고 들어와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대학생 기자로 살아간다는 것, 특히 사회부 기자로 활동한다는 것은 때로  몇 가지 힘든 점들을 가져다준다. 가장 본질적인 고민은 지금 내가 속한 사회부라는 부서의 정체성이다. 연세춘추에 사회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을 다룰 수 있으며, 무엇을 다뤄야 하며, 무엇을 다룰 수 없는가? 이런 고민을 충족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찾고 기사 방향을 정하는 것은 하나의 고역이다. 또다른 고민은 이러한 아이템으로부터 기인하는 취재시의 어려움이다. 거의 모든 취재가 학교를 벗어난 외부 취재라는 점,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어느 정도 이름있는(?) 인물이나 단체를 컨택해야 한다는 점, 이 두 가지 요소가 주는 압박이 기자를 누른다. 
이를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1527호 ‘그들의 진정한 송환을 위하여 취재를  할 때였다. 보도기사를 쓰기 위해 학내의 학생과 교수, 직원을 대상으로 취재를 했을 때는 ‘연세춘추 기자’라는 간판이 주는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부의 기사를 쓰기 위해 학외 취재를 하고, 사회적으로 이름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취재를 하려고 할 때, 연세춘추 기자라는 간판은 어느샌가 그 효력이 상실돼 있었다. 장기수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외곽 지역까지 취재를 가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피로에 불과하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와 송환 논쟁에 관해 취재 요청을 하면 풋내기 대학생 기자로 취급받고, “대학신문 기자는 이런 사안을 다루기엔 부족하니 다른 기사나 쓰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비전향 장기수를 다루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국가보안법과 사상 전향 논쟁을, 대학신문이 감당하기엔 미묘하고 정치적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삭제해야 했을 때. 그때 내가 느낀 무력감은 매우 컸다. 대학생 기자에서 ‘기자’가 소외되고 ‘대학생’이 부각될 때의 내 모습...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떠돌며 괴롭힐 때도, 내가 아직까지 놓고 있지 않은 것이 있다. 연세춘추, 그리고 사회부를 향한 나의 열정이다. 나를 괴롭히고 누르는 것들은 어쩌면 대학생 기자 모두에게 주어진 숙명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둘러싼 이 넓은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산맥과도 같다. 그 산을, 나는 연세춘추의 사회부 기자라는 베낭을 메고 오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여정은 힘들고 지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과 힘든 것들을 극복하는 노력은 나를 정상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산의 정상에는, 백석 시인이 말했듯 외로이 서서 눈을 맞을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나를 반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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