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인기리에 종영한 『궁』,드라마로만 보셨나요?”
아직도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당신. 그렇다면 요즈음 일어나는 문화 현상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 ‘궁’의 원작이 ‘만화’라는 것은 방영 전부터 이슈화된 사실이고,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테니까.

바로 이것은 최근 하나의 스토리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게 만든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 현상이다. 이는 영화관의 스크린, 만화책, TV드라마, DMB폰 등 풍성한 매체의 뒷받침에 힘입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기본적으로 서사구조상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영화, 연극, 만화 사이의 ‘삼각 관계’에서 원 소스 멀티유스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 연극『올드보이』의 상연을 기다리는 연인의 모습 /신나리기자 journari@

영화에서 연극으로, 연극에서 영화로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연극 『올드보이』는 원 소스 멀티유스의 대표적인 예다. 만화를 원작으로 시작해 박찬욱 감독의 손을 거쳐 세계적인 영화로 거듭난 『올드보이』가 이번에는 연극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 연극의 관객 중에는 만화와 영화를 통해 스토리를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미 접해 본 작품이기에 관객들은 친숙함을 갖고 다른 장르와의 차이를 궁금해 하며 연극을 보러온 것이다. 이처럼 연극은 유명한 원작에서 비롯된 인지도 덕분에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연극을 본 장안대학교 이석준군(디지털스토리텔링·06)은 “기본 구성은 같지만 세부적인 캐릭터와 접근방식이 달라 흥미롭다. 영화의 유명한 액션 씬을 연극 나름 방식으로 도입해서 스릴감이 배어나온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외에도 국립 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이(爾)』에 이어 영화『살인의 추억』의 원작 연극『날 보러 와요』가 공연 중이다.

사실 원 소스 멀티유스의 흐름은 작년 『웰컴투 동막골』,『박수칠 때 떠나라』의 흥행으로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기존 소수의 연극관람객만이 향유했던 감동적인 스토리를 영화를 통해 많은 대중들에게도 전달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된다. 또한 박주연 교수(신방·디지털커뮤니케이션)는 “문화를 즐기는 사람 스스로가 친숙하게 여기는 방식으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양질의 소스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원 소스 멀티유스의 대표적인 장점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소설’을 ‘영화’화하는 추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소설의 영화화는 예전에 소설 『서편제』가 수십 년 뒤 영화화 된 것과는 달리 전환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곧 개봉 예정인『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오래된 정원』을 비롯해 할리우드의 『다빈치 코드」는 책이 발간된 이후 수년 이내에 영화화가 결정됐을 정도다. 소설의 영화화를 통해 영화 관객들이 다시 책을 접하는 피드백이 이어져 독자층이 한정됐던 출판계의 영향력도 커질 전망이다.

새로운 소스의 출현, 만화

전통적인 소설, 인터넷 소설에 뒤이어 원 소스 멀티유스 대열에 새롭게 끼어든 인쇄 매체는 ‘만화’다. 만화는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스토리라는 편견을 깨고 실제 연극, 영화화 물결이 거세게 불고 있다. 강풀의『순정만화』는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감가는 인물들의 등장으로 사랑을 받고 지난 겨울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연극의 대사 속에 만화 특유의 의성어, 의태어를 삽입하고, 등장 인물들의 공간 이동에 만화적인 설정을 도입해서 신선한 매력을 주고 있다. 이외에도 강풀의 만화 『바보』,『아파트』는 영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만화와 영화적 실현에 대해 기대해 볼만하다. 또한 ‘B급달궁’(본명 채정택)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그린 인터넷 만화 『다세포 소녀』의 영화화도 주목을 받고 있다.

원소스 멀티유스 뒤의 그림자

그러나 이와 같이 활발한 원 소스 멀티유스 흐름 속에서 우려되는 점들이 있다. 우선 지나치게 여러 매체, 장르에서 상업적으로 접근할 경우 재탕, 삼탕으로 문화 수용자의 선택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또한 원작의 흥행에서 쉽사리 인기를 얻는 작품들 속에서 창작극들이 묻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창작극 「복어」 기획자 정세희씨는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는 창작극 특유의 매력과 탄탄한 스토리로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흥미위주의 대중성을 바탕으로 나온 작품과의 경쟁은 어려운 실정이다.”며 힘든 사정을 설명했다. 계속 지난 작품의 명성에만 기댄 새로운 작품의 탄생은 진정한 창작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점을 극복하고 원 소스 멀티유스 문화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 “기획 단계부터 각각의 매체 고유특색을 살릴 수 있는 구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며 박 교수는 덧붙였다. 훌륭한 원작이더라도 단순히 오락이나 멜로적 요소만을 부각시켜 수용자에게 다가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자기 취향에 맞는 매체로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문화 수용 태도가 배경이 된 원 소스 멀티유스! 이제는 하나의 소스가 빚어내는 문화적 파급력에 대해 절감할 필요가 있다. ‘원작을 뛰어넘는 모방은 없다’는 인식을 극복하고, 다양한 장르의 실속 있는 발전까지 가능하게 할 원 소스 멀티유스에 눈과 귀를 모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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