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생활시설 애란원

▲ 우리대학교 정문에서 큰길로 내려가지않고 150m 직진하면 애란원이 보인다. 모성애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아이를 낳고 싶은데, 환경과 경제적 상황·주위 시선이 힘든 어머니들을 위한 곳이 있다. 우리대학교 동문에서 150m 정도 거리에 위치한 ‘애란원’이 그곳이다. 애란원은 지난 1960년 4월 1일 미국인 선교사 반애란(Mrs. Eleanor C. Vanlierop) 여사에 의해 세워졌다. 설립당시에는 윤락녀가 자립하도록 하고 윤락을 예방하기 위해 가출소녀를 돕는 일을 하다가, 1973년부터 ‘미스맘(일부 사회단체에서 미혼모의 대용어로 쓰는 신조어)’을 돕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미혼 임산부는 누구나 입소할 수 있는 이곳에는 현재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미스맘 32명과 8명의 아기가 따뜻한 보호를 받으며 쉬고 있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기도 한 이곳을 찾아가 한상순 원장을 만났다. ▲ 애란원 입소자들이 꿈꾸는, 사람들의 축복속에 행복한 모자의 모습
축복받지 못한 생명

“평균 10.9세의 아이들이 가정폭력 등의 문제로 가출을 반복한다. 가출한 소녀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길에서 만나는 남자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이런 남자들은 대부분 소녀의 ‘몸’을 바란다” 며 한 원장은 ‘어린 엄마’들이 생기는 원인 중 하나를 설명했다. 그렇게 만난 남성은 대부분 임신한 소녀를 떠나버리고,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은 뱃속에 아기를 가진 채 어찌할 줄을 몰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인데, 미스맘들에게 기쁨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원장은 그림 두 장을 보여줬다. 사랑표 모양 빛 가운데 한 여성이 책상에 기대어 잠들어 있고, 그 주위에는 아기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둥둥 떠 있다. 여성의 얼굴에는 기쁜 미소가 번져있다. 애란원의 한 예비엄마가 그린 그림이다. 첫눈에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의 설레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꿈꾸며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는 남자친구가 도망가버려 희망이 사라진 후 그린 그림”이라며 동일인이 그린 다른 그림을 보여줬다. 그림 속 엄마의 행복한 모습은 사라지고, 사랑표 대신 검고 지저분한 먹구름이 낀 배경으로 바뀌어있었다. 천사 같던 아기들은 더 이상 엄마에게 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림을 보여준 한 원장이 말을 이었다. “이곳에는 대학생 또래도 많다. 당신이 임신 8개월이라 학교에 더 이상 못나가겠고 부모님께 말도 못했고, 아이 아버지는 휴학하고 군대나 유학 등을 핑계로 도망갔다고 생각해보라. 어떤 감정이겠는가.” 임신한 여성 대부분이 혼란 그 자체이고, 처음에는 죽음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분노와 우울, 그리고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잠만 자는 산모도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사랑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별 부담 없이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며 한 원장은 책임감 있는 성의식으로 남녀 모두가 몸가짐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맨 우측의 한상순 원장을 비롯, 애란원의 든든한 지킴이들 깊은 죄책감까지 치유해야 진정한 회복 가능 애란원에서 쉬면서 미스맘들은 아이를 기를지 입양시킬지를 결정한다. 양육결정모자는 ‘애란모자의 집’에서 1년 정도 거주하며 건강관리·부모교육·가족상담·진로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립의 밑거름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이때 잘 먹고 잘 보호하기만 해서는 이들의 미래를 진정 새롭게 가꿔줄 수 없다. 우리사회에서 미혼모라는 주홍글씨를 안고도 건강히 자립하게 하려면 마음 속 깊은 곳의 죄책감을 치유하고, 자신이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며 한 원장은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 위기가 기회가 되고 오히려 삶의 전환점이 되고 감사하는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 애란원 교육 프로그램의 목표다. 언뜻 생각하면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인데, 이를 애란원 사람들은 삶의 전환점, 감사의 계기로 만들어준다니 정말 놀랍다. 늘어나는 미혼양육모에 정부 지원 필요 한편 매년 애란원에 입소하는 2백여명 중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결정하는 비율이 지난 1993년 3.6%에서 지난 2005년 30%선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미혼모 관련 단일법령이 제정돼있지 않고, 미혼모에 대한 재정지원이 적은 우리나라에서 ‘싱글맘’으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5년 여성가족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아이를 입양시키기로 한 미혼모들은 아이에 대한 죄책감(46.1%)과 아이에 대한 미련(34.6%)으로 매우 힘들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입양을 택한 산모의 37.7%가 경제적 지원이 있다면 아이를 기르겠다고 답해, 아이를 기르고 싶어 하는 미혼모가 많지만 이들에게 경제적 문제가 큰 장벽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 2004년 해외입양아 가운데 1명을 제외한 2천2백57명이 미혼모 아동인 것으로 보아, 경제적 문제로 아이를 기르지 못하는 미혼모 문제를 해결하면 해외입양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슬픔을 기쁨으로, 좌절을 희망으로 ▲ 한 퇴소자가 감사의 마음으로 선물한 그림.
애란원 홈페이지(http://www.aeranwon.org/) ‘로뎀 게시판’에는 퇴소한 애란원 식구들의 글이 올라와 있다. 아이와 자신의 소식을 전하며 항상 이곳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너무 감사한 기억들이 많다는 글들이 자주 오른다. 한 원장은 “그 친구들에게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가장 힘들 때였겠지만, 돌아보면 앞으로 전진 할 힘이 됐다고들 한다. 오히려 더 ‘풍성한’ 세계를 알게 된 것을 감사한다는 여성도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거 절망과 위기 속에 죽음을 생각하던 어린 엄마들이 건강히 자립해서 “애란원 기쁨조가 되겠다”며 찾아와 다른 미스맘들을 격려해줄 때 애란원 사람들은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여기 있는 친구들이 위기를 다 기회로 전환시키고, 하나님 안에서 놀라운 변화를 받고 또 순산하길 바란다”는 한 원장은 “요즘 10년 전 퇴소한 여성이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애란세움터(양육을 결정한 미스맘들이 부모교육을 받으며 자립을 준비하는 그룹홈 시설)’가 이사하는데 후원금 모금이 원만히 이뤄졌으면 한다”고 최근 그의 소망을 밝혔다.
우리 사회에 미스맘에 대한 시선이 누그러지고 미스맘들이 다른 가정과 평등한 위치에서 당당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때가 오면, 또 다른 위기의 여성들을 위한 일을 찾아 하겠다는 애란원. 이들의 여성에 대한 사랑은 이 땅의 모든 여성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남아, 여성의 든든한 바람막이숲이 될 것이다.

/글, 사진 조진옥 기자 gyojujinox@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